등록 : 2012.02.01 19:56
수정 : 2012.02.01 19:56
|
윤석천 경제평론가
|
“범죄·정신병 등 사회병리현상은
절대빈곤보다 상대적 불평등과
더욱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아니, 친형제가 사도 쓰린 게 사람이다. 왜 그럴까. 친할수록 비교가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치부와 약점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은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평가’ 위협이다. ‘사회’라는 경쟁의 터에서 얼마만큼 앞섰느냐 혹은 뒤처졌느냐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인간은 가장 취약하다. 역시 타인과의 상대적 비교가 문제다.
비교는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 불평등이 없다면 애초 비교란 불가능하다. 비교란 단어는 생기지도 않았을 거다. 결국 불평등이 ‘불행의 씨앗’인 셈이다. 더 나아가 불평등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망가뜨린다. 사촌이 땅을 사면 처음엔 배가 아픈 정도지만 나중엔 그가 미워지기 마련이다. 솔직히, 갈겨주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이처럼 불평등은 개인을 불행하게도 하지만 더 크게는 통합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영국 노팅엄대학의 리처드 윌킨슨 교수는 <스피릿 레벨>이란 책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를 파괴하는지를 실증적으로 규명했다. 그의 연구는 다음의 가설을 증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범죄·정신병과 같은 사회병리현상은 절대빈곤보다도 상대적 경제 불평등과 더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연구를 해보니 실제로 사회병리현상은 한 국가의 전체적인 부의 크기나 1인당 평균 소득과는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경제 불평등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지만 기대수명이 선진국 중 가장 낮았고 범죄 위험도 매우 높았다. 경제 불평등이 심화된 결과이다. 특히 미국에서도 경제 불평등이 심한 주일수록 살인 발생 건수가 많았다. 경제적 불평등이 덜한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병리지수는 낮았으며, 불평등이 심각한 미국·영국 등은 그 지수가 높았다.
한국의 불평등 상황은 어느 정도일까. 이는 기획재정부가 올해 1월 펴낸 ‘2011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소득분배와 양성평등 등 형평성 지표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하위권이었다. 가구주들의 계층이동에 대한 생각도 부정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말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사회조사’ 내용은 암울하다. 일생 동안 노력을 한다면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가구주의 비율은 28.8%로, 2년 전 조사(35.7%)에 비해 줄었다. 가능성이 ‘낮다’는 비율은 같은 기간 48.1%에서 58.7%로 높아졌다.
이들 결과를 보면, 한국의 경제 불평등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게다가 사회적 계층이동의 통로까지 막히고 있다. 사회적 계층이동이 어려운 세상은 중세의 신분사회와 다름없다. 중세는 혁명에 의해 무너졌다. 그 혁명을 부른 건 불평등이다. 특히 경제 불평등을 줄이지 않으면 사회 붕괴를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불평등을 줄이는 첫걸음은 세금혁명일 수밖에 없다. 세금을 통한 소득이전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국가는 건강하다. 특히 부유층의 조세부담률이 높아야 한다. 조세부담률과 경제 불평등과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세부담률이 높은 북유럽 국가는 경제 불평등이 낮았다. 반면에 조세부담률이 낮은 미국·그리스·터키 등은 모두 경제 불평등이 높았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부끄럽게도 오이시디 국가 중에서도 하위권이다. 당연히 한국의 경제 불평등 수준을 개선하기 위해선 부유층의 조세부담률을 높여야 한다.
기득권층은 경제 불평등이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동반 몰락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경주 최부자의 혜안을 이 땅의 기득권층이 가질 때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