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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02 19:27 수정 : 2012.02.02 19:27

이창근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삶을 파괴한 작전이 죽음이란 형태의
후유증으로 아프게 드러나고 있다
이들의 눈물이 거대한 우물을 판다

쌀쌀한 아침, 식전 밥을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 서울 혜화동 재능 본사 앞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이름하여 ‘희망뚜벅이’들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이면 가능한 시대에 미련하게 뚜벅이 타령이라니 조금 미련스럽게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이 추운 한겨울에 말이다. 함께 모인 이들의 사연은 깊이 팬 주름처럼 굴곡져 있다. 장기투쟁 과정에서의 아물지 않은 생채기 위로 덧상처가 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절박한 요구를 조금 미룬 채 하나의 구호를 외친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구호. 1월30일부터 2월11일까지 13일 동안 장기투쟁 사업장을 순회하며 각 사업장의 부당한 탄압을 알리고 선전하는 역할을 자처한 이들. 귀착점은 3차 희망텐트촌으로 불리는 평택 쌍용차공장 앞이다. 벌써 20번째 노동자가 숨진 죽음의 공장이다.

명동 세종호텔을 향해 걸은 지 두 시간이 채 안 된 시간, 경찰은 인도로 걸어가는 뚜벅이들을 토끼 몰듯 몰아가기 시작했다. 경찰의 대응이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젠 아예 인도에 우리를 감금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경찰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어떤 이도 대답이 없다. 옴짝달싹 못하고 5시간을 인도에서 감금됐다. 인도 보행을 막은 이유가 궁금했다. 확인 결과 경찰청장이 시시티브이를 봤고 몸 벽보가 눈에 거슬렸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2009년 8월 그러니까 쌍용차 파업 당시만 해도 경기지방경찰청장이었다. 파업 이후 ‘성공한 작전’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경찰청장이 된 인물이다.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공권력 남용 사례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지경이다. 특히 노동현장에선 공권력과 사권력인 용역의 차이가 사라진 지 오래다. 사용자 쪽의 시설보호 요청엔 득달같이 달려가도, 폭력에 일상으로 노출된 노동자에겐 외려 닦달하기 일쑤이니 말이다. 공권력의 공정치 못한 법집행이 현장에서부터 기형적으로 뒤틀려버린 것이다.

이렇듯 노동현장에 경쟁하듯 편파와 위법한 공권력 남용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뭔가. 그 이면에 ‘성공한 작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공권력으로 쌍용차 파업은 진압됐고, 죽기 일보직전까지 내몰린 노동자들은 그나마 목숨은 건졌다. 죽지는 않은 것이다. 그 이후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진압의 ‘기준’이 생긴 건 아닐까. 인권을 짓밟고 조롱하고 희롱하는 것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란 ‘인식’이 경찰 저변에 깔리는 계기는 아니었는가.

쌍용차는 파업 진압 이후 15명의 노동자가 더 죽었다. 인과관계는 차치해도 상관관계가 분명한 이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여전히 진압 후유증으로 정신의 내상은 물론 육체의 상처로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삶을 파괴한 작전이 죽음이라는 형태의 후유증으로 아프게 드러나고 있다. 흘릴 눈물조차 마른 이들의 눈물이 모여 거대한 눈물의 우물을 판다. 이 기막힌 작전 앞에 노동자는 쓰러지고 죽어갔다.

총선이 코앞인 상황에서 경찰 총수를 역임했던 이들이 출마를 위해 분주하다. 현장탄압을 진두지휘한 이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겠다고 너도나도 나서는 이 몰염치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적어도 이들에게 ‘기준’을 보여줘야 하지 않는가. 백보 양보해서 이들에게서 ‘폭력 허가증’을 회수해야 하지 않는가. 현장과 거리에서 유사한 공권력의 성공한 작전들을 더는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노조와 노동자 사냥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옛날 아메리카에서 흑인을 상대로 사냥연습을 했던 백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이창근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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