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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05 19:37 수정 : 2012.02.05 19:37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정당 이름에 ‘새’, ‘통합’, ‘신’자가
들어가는 일은 좋지 않다
그런 당명은 오래 버틸 수가 없다

병의 원인을 제거한다며 자해할 수는 없듯이, 민주주의를 잘하기 위해 정치를 개혁해야지 민주주의를 없애는 개혁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고, 최근 일련의 양상은 그 결정판이 아닌가 한다.

그간 많은 정당들이 당 체제를 혁신해 백년 가는 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말대로라면, 민주화 이후 선관위에 등록한 정당 이름만 110개를 웃도는 일은 없어야 했다. 당명을 바꿔 ‘신장개업’을 내거는 일도 없어야 했다. 사실 정당 이름에 ‘새’, ‘통합’, ‘신’자가 들어가는 일은 좋지 않다. 새정치국민회의(1995년), 통합민주당(1995년), 신한국당(1996년), 개혁신당(1996년), 국민신당(1997년), 새천년민주당(2000년), 대통합민주신당(2007년)과 같은 정당들의 궤적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런 당명은 오래 버틸 수가 없다. 한번은 몰라도 계속 새로움을 주장할 수도 없고 늘 통합중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름 바꾸고 혁신위 만들고 공천심사 외주 주고 새 인물 들여와서 정치가 좋아지고 민주주의도 심화되었다면 굳이 사시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거의 매 선거마다 절반 가까이 국회의원을 바꿔 초·재선이 절대다수가 되었어도 정치는 좋아지지 않았다. 큰 선거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변화된 외양을 과시했지만, 당 체질은 계속 나빠졌다. 잘못된 정치를 따져 물을 대상만 모호해져 책임정치로부터 멀어지기만 했다. 그런 개혁을 주도한 사람들이 행복해진 것도 아니다. 그들 역시 뒤이은 개혁에 또다른 희생자가 되었다. 정당들이 이런 자해적 개혁을 반복하는 일의 최종판은, 국민경선제와 여론조사로 공직후보를 선출하고 지도부 구성을 하게 된 데 있다. 그런 식이라면 정당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시끄럽게 선거를 할 일도 아니다. 그냥 여론조사 잘하는 회사나 기관에 맡겨 누가 더 국민의 생각에 부합하는지 조사해 결정하면 될 것이다. 이렇다 보니 지구당에 이어 중앙당 폐지가 개혁으로 둔갑했고, “당리당략이 아닌 국민을 생각하는 정당”이라는, 앞뒤가 모순된 주장을 내건 정당이 출현하기도 했다. 백성을 염려하는 군주정의 덕목도 아니고, 하나의 정당이 국민을 대표하는 일당제 국가를 지향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 논리가 쉽게 주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당원이 되고 헌신하면서 좋은 당 만들고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해가는 꿈을 꿀 수 있을까. 조직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이 병행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정당이 좋아질 수 있을까.

누군가 필자에게 한국 정치의 특징적 패턴을 말하라면, 시끄럽고 격렬한 다툼은 계속되고 외양의 변화는 잦은데 그런 소란이 지나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낡은 구조가 건재함을 과시하고 그 사이사이에 비극적으로 퇴장한 정치인들의 목록만 즐비하게 되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런 무덤 위에서 내일은 자신이 제물이 될 거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지극히 단기적인 열정을 동원하는 데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 많다. 정당 내부로부터 진지한 공적 토론이 전개되고 사회적으로 확산되기는커녕 여론에 끌려다니기 급급하다. 당내 구성원들 사이에 협력의 기반도 약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결되어 있는 추종자들의 반응을 관리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정치가는 많다. 개인 소통은 좋아졌는지 몰라도 정당은 공허해지고 있다. 회의나 모임에 나와서도 테이블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려 자신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다는 단문 메시지 올리는 사람도 많다. 상황이 이런데 무슨 백년 가는 당을 말할까. 정당은 죽고 있다.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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