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13 18:50
수정 : 2012.02.1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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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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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의 문턱을 넘기 전에 한 조각
의문을 남겨두는 태도야말로
재판관이 갖춰야 할 제1덕목이다
1931년에 20대 수학자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수학의 문외한으로서 그 업적을 설명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거칠게 말해서 그는 “진리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수학적 명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천재의 솜씨로 증명했다. 나는 ‘불완전성 정리’가 ‘인간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었다고 과장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학문보다 엄밀하다고 여겨진 수학의 불완전함을 보여준 것은 ‘우리는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한 토머스 쿤은 과학사의 연구를 통하여 자연과학의 발전이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과학자 사회에서 우위를 차지하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으로 대체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 자연과학의 발전조차 사실은 단순히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사회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수학과 자연과학의 사정이 그렇다면 사회과학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쿤은 사회과학은 아직까지 공유한 ‘패러다임’이 없는 상태로서 ‘전-과학’이라고 말한다. 그토록 많은 논쟁들이 결말 없이 표류하는 사회과학을 보면 누가 쿤의 견해를 반박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각자의 욕망과 정치적 의도가 개입하는 사회 현안들에 대한 인식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조용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천안함이 북한에 의하여 침몰되었다고 믿지만 확신하지는 않는다”는 발언이 주된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도 천안함이 어떻게 침몰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설마 정부가 조작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수많은 거짓말로 신뢰를 잃은 정부가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았을 때, 북한의 행동으로 보이는 증거는 강조하고, 반대의 증거는 애써 외면하는 태도로 인하여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가. 이런 상황에서 증명의 문턱을 넘기 전에 한 조각 의문을 남겨두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그런 태도야말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재판관의 제1덕목이다.
무엇을 확신할 수 있고, 무엇을 확신할 수 없으며, 또 무엇은 그 경계에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박사학위가 필요한 일도 아니다. 우리는 정규교육을 전혀 거치지 않고도 그런 분별을 익힌 많은 사람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을 나왔지만 그런 분별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본다. 문제는 학식이 아니라 성품과 지혜다. 어떤 개인이 필요 이상으로 확신하는 성향을 가진 것은 안타깝지만, 그로 인한 대가는 스스로 인생에서 치르게 될 것이므로 크게 탓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충고하는 것에 그친다. 그런데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설익은 확신을 휘두르고, 심지어 자신들처럼 확신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몰아세운다면 심각한 문제다. 새누리당은 학식을 중시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학식은 자신들이 더 높은 지위와 재물과 명예를 차지하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진리와 자신의 욕망을 혼동하고, 세상에 바람직한 것과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을 교묘히 혼합하는 사람들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할 자격이 없다. 새누리당은 조 후보를 부결시킴으로써 자신들이 공적 업무를 수행할 품성과 자질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들이 부결시킨 것은 마치 조 후보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부결시킨 것은 어리석은 자신들이고, 만일 어리석은 게 아니라면 ‘영악한 욕망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자신들이다. 선거가 멀지 않았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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