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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19 18:48 수정 : 2012.02.19 18:49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시민이 공적 논의에 참여할 의사와
참여의 비용을 감수하는 것 없이
정치가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시민의 모습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 공동체 문제에 적극적인 참여자, 나아가 도덕적 자기 결정과 정치적 선택의 능력을 갖춘 주권자에 있다. 현실에서 그런 시민의 역할이 온전히 실현되기는 어렵다 해도, 좋은 정치란 가능한 한 그에 가깝게 실천될 수 있는 조건을 성숙시키는 데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 것 같다. 이러다가는 시민의 역할이 정치 이벤트에 동원되는 청중 내지 소비자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노르웨이 출신 정치학자 욘 엘스테르가 강조하듯, 소비자의 선호를 주어져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시장에서의 결정’과는 달리, ‘정치에서의 결정’은 시민의 선호가 공적 논의를 통해 집합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중시한다. 소비자 개인을 위한 상품 선택과는 달리, 정치적 선택은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잘못된 상품 선택과 잘못된 통치자 선택이 가져오는 악영향의 차이는 말할 수 없이 크다. 따라서 공적 논의에 참여할 의사와 참여의 비용을 감수하는 것 없이, 정치가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자발적 결사체를 조직하고 선거운동에 자원봉사도 하고 당비도 내는 등의 다양한 참여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듯 참여에 대한 책임성과 헌신을 기초로 이견과 합리적으로 경쟁하고 차이를 조정하는, 이른바 ‘선호 형성’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민주정치가 좋아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정치도 마케팅 회사처럼 운영될 수 있다. 시민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고르듯 몇 번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선호를 설명할 필요도 없고 결과에 책임을 질 이유도 없다. 누군가로부터 부탁을 받거나 대가를 받고 투표를 해도 그 때문에 감수하게 되는 심리적 부담도 크지 않다. 정치가 역시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조직하고 공적 토론을 이끄는 힘든 수고보다 인맥과 돈의 힘을 빌려 표를 구매하려는 유혹에 이끌리기 쉽다. 그것의 귀결은 무엇일까? 정치를 투자로 생각하는 후보들에 의해 동원되거나 혹은 여론의 이목을 끄는 이벤트 행사에 이끌린 사람들 사이에서, 이른바 ‘푸시버튼 데모크라시’(push-button democracy)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우리가 투표율이 낮은 것은 투표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은 투표 참여에 드는 비용이 아주 낮은 나라다. 미국처럼 유권자가 스스로 투표자 등록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세계 유례없는 독립된 헌법기구로서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가지고 투표자 등록과 투개표 비용을 전담하는 곳이 한국이다. 선거일은 법정 공휴일이다. 높은 도시화율 덕분에 투표장과의 거리도 짧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고 있어 문제라면, 우선적으로 정치 참여의 조건이 어떤가부터 살펴야 한다. 불평등하게 차별받고 있다고 항의하는 집단들한테 결사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 그들이 정치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시민들의 다양한 선호를 의석으로 반영하는 선거제도의 비례성에는 문제가 없는지, 정당들의 지역대표 및 직능대표 기능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이성적 토론을 이끄는 공론의 장은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는지 등등이 먼저 물어져야 할 것이다. 정치 참여의 본질은 이런 문제에 있는 것이지, 간편한 버튼 누르기 기술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 참여와 이벤트 참여는 다르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시민은 소비자가 아니다. 모바일 투표를 둘러싼 지금의 논쟁은 민주주의와 아무 관련이 없다.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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