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2.23 19:26 수정 : 2012.02.23 19:26

이창근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노동자는 더욱 궁지로 몰리고
먹고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은
자본의 배당금 액수만큼 증가했다

며칠 전 서울시내를 걷다 대학가 졸업식 장면을 봤다. 꽃다발 파는 늘어선 상인과 졸업식장으로 향하는 차량의 늘어선 꼬리는 묘한 대조를 이뤘다. 졸업생들의 표정은 정문에 걸려 있는 취업 현황 현수막의 그늘처럼 밝지 않았다. 88만원 세대를 넘어 44만원 세대를 향해 치닫는 이 미친 세상으로 또 그렇게 수많은 산업예비군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6년의 ‘해고(解雇)학교’를 마치고 졸업식을 앞둔 학생들이 있었다.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콜트·콜텍 기타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다. 해고학교는 콜트 노동자 56명과 콜텍 노동자 67명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제 20명은 졸업을 했고 26명은 해고학교를 다시 다닌다. 6년 동안 이들에게 온전한 삶은 없었다. 관계의 파괴라는 수사로는 담지 못할 인간의 파괴만이 존재했다. 소송과 벌금은 전과자의 길을 열었고, 15만 볼트 송전탑과 45미터 고공농성은 투사의 길을 안내했다. 6년을 말 그대로 악착같이 버티면서도 인간존엄은 끝내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기타를 만들던 손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콜밴’이란 밴드를 구성했다. 거기엔 문화예술인들의 도움도 컸다. 녹아내리는 인간성, 주저앉는 이기심이 해고의 가장 큰 해악임을 이들은 삶과 노래로 웅변했다. 더 낮고 아픈 곳으로 강물처럼 흘러드는 이들의 음악과 연대는 주저앉는 해고자들에게 힘이며 용기였다. 쌍용차 투쟁 1000일 문화제에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던 이들은 1848일을 싸우고 있었다. 잔인한 6년은 이들에게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인가. 삶의 일부분이 뭉텅 잘려나간 이들에게 정상적인 삶의 에너지는 아직 남아 있을까.

해고가 살인임과 동시에 일상인 시대다. 이직과 전직이 밥 먹듯 이뤄지는 뼛속 깊은 신자유주의 안갯속이다. 개인의 노력이 성공을 보장한다는 거짓 부채질이 이곳저곳에서 대답 없이 출몰한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가당치 않다는 윽박지름이 견고한 콘크리트로 자리잡고 있다. 자본의 이윤율이 가파르게 치솟고 그 이익의 최종수령자가 자본으로 향한다. 빈한 자와 부한 자의 간극이 벌어지고, 벌어진 간극의 낭떠러지로 노동자는 대책 없이 추락했다. 노동자는 더욱 궁지로 몰리고 먹고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은 자본의 배당금 액수만큼 증가했다. 해고가 어느 순간 산업질서로 자리잡으면서 우리 안의 열패감은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미사여구에 강제적 날인을 했다. 비정규직 1000만의 시대, 이대로 가다간 자본의 무한팽창이라는 풍선은 임계점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해고를 금지하는 ‘해고금지법’을 제정해 사람을 살리려는 절박함보다, 정리해고 요건 강화가 더 그럴싸한 논리라고 겁박하는 비합리의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다. 이제는 무엇을 중심에 둘 것인지를 대놓고 물어야 한다. 높은 스펙이 나를 위한 스펙이 아닌 자본의 일회용 스펙으로 전락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개인의 삶을 성장시키기는커녕 더욱 곤궁한 삶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의 노력이 자본의 벽 앞에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가.

해고학교가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기업프렌들리 정부 아래에선 특히 학교폭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쩌면 입학을 말았어야 할 학교이며, 없어져야 할 학교다. 개인의 능력과 운 나쁨이 원인이 아닌 이 학교에는 앞으로 수많은 예비학생들이 들어올 것이다. 구조와 근본의 문제로 사안을 인식하지 않고 철마다 땜질처방으로 넘긴다면 말이다. 여전히 코오롱 해고학교는 8년째 운영중이며, 재능교육은 1526일을 넘었다. 해고 3년차인 나는 이 학교를 졸업하고 싶다. 아니 해고학교를 없애고 싶다. 앞으로 겪을 아픔과 고통은 쌍용자동차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창근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