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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29 19:34 수정 : 2012.02.29 19:34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대처와 달리 인권·평화·복지를 위해
힘쓴 여성 최고지도자들이 많다
대처 타령은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새삼 주목받는 계절이다. 메릴 스트립이 영화 <철의 여인>에서 대처 역으로 열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받았으니 한국에서도 영화와 더불어 영화의 실제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것이다.

소련 시절 대처에게 부정적 의미에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던 러시아의 티브이에서도 작년 여름 그에 관한 영화를 방영하기에 본 적이 있다. 2009년 <비비시>(BBC)에서 제작한 티브이 영화 <마거릿>이 그것인데, 대처의 실각이 결정되는 순간까지 열흘 동안의 긴박한 영국 정계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 몰락의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린지 덩컨은 수척하고 다소 신경질적인 외모의 여인으로 등장한다. 메릴 스트립의 얼굴은 훨씬 선이 곱고 부드러운데, 영화 속 어느 장면의 사진에서 받은 느낌은 ‘루크레치아 보르자 닮았네’였다. 루크레치아는 오빠 체사레 보르자(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이 되었던 그 냉혹한 군주)의 권력의지 때문에 정략결혼을 해야 했던 불행한 여인이다. 성격적으로 극단적 대조를 보이는 두 인물이 메릴 스트립이라는 명배우 속에서 겹쳐 보였으니 그것은 물론 내 상상이 빚어낸 착각일 것이다.

영화와는 별개로 대처의 이름이 다시 거론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주도했던 신자유주의의 파국 때문이다. 대처리즘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도 대처식 정치가 야기한 논란과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민영화와 대량해고, 북아일랜드 사태에 대한 강경대응, 아르헨티나와의 전쟁 등 사람보다 경제를, 경제보다 자신의 권력을 더 중시하는 그의 태도는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철도 민영화와 구조조정으로 빚어진 비효율과 잦은 사고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는데, 대처리즘의 치명성은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눈앞에서 번연히 보면서도 ‘이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라는 허구 앞에 꼼짝없이 그 길을 밟아가게 만드는 그 이상한 담론에 있다.

내가 마거릿 대처의 이름을 들을 때 찜찜한 기분이 드는 또다른 이유는 한국의 여성 정치인들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때 “한국의 대처가 되겠다”는 발언을 자주 한다는 데 있다. 대처와는 다른 이념적 지형에 있다고 할 정치인들도 그리한다. 물론 1979년 대처가 영국 총리가 되었을 때까지 선거로 최고지도자가 된 여성은 희소했다. 그러나 그 후 여성 최고지도자의 수는 빠르게 증가했고, 대처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 인물도 적지 않다. 재직 시절은 물론 퇴임 뒤에도 인권 수호와 환경 보호, 평화를 위한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메리 로빈슨 전 대통령은 대표적이다. 그로 할렘 브룬틀란 노르웨이 전 총리도 복지·인권 분야에서 좋은 지도력을 발휘했다. 하다못해 “철의 여인”이란 별명의 원조요, “남자보다 더 남성적”이란 평가에서도 선배인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전 총리도 국내정책에 관한 한 노동장관 재직 시절부터 노동자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 여성 정치인들도 대처 타령은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대처는 여성 지도자이되 여성적 정책을 취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교육장관 재직 시절 “학생들에게서 우유를 빼앗은 정치인”으로도 기억된다. 그런데 대처는 적어도 자신의 보수적 가치를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갔다. 지금 한국의 가장 유명한 여성 정치인인 박근혜 의원은 장기집권자를 아버지로 두었다는 것 이외에 어떤 정치적 정체성과 정책구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완고한 신자유주의(대처리즘의 복사판이었던 ‘줄푸세’)를 내세우다 전략적 사고 때문에 아무 설명 없이 복지 담론으로 옮겨오는 모습, 생태·인권·평화 문제에서 아무 언급이 없는 태도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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