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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05 19:13 수정 : 2012.03.05 19:13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시장’이라는 이름하에 ‘경쟁력’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해도 좋다는
사이비 신앙의 미망에서 깨어나야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 즉 ‘사악한 것을 배척하고 정의를 지킨다’는 말을 선택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오늘의 시대정신은 불의·편법·탐욕·거짓 대신에 정의·배려 등의 가치를 세우는 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가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들 한다. 맞는 이야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공공복지 꼴찌, 극심한 빈부격차, 노인 자살률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벗어던지려면, 증세와 조세개혁, 복지확충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종부세를 폐지하고 법인세를 인하하여 분배구조를 극도로 악화시키고 서민 복지에 써야 할 22조원을 4대강에 퍼부었던 바로 그 정당의 대선 후보도 급기야 복지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복지 담론은 매우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 복지는 사회적 신뢰, 연대, 배려의 정신을 바탕에 깔아야 하는데, 지금처럼 남북 사이의 긴장과 남한 내의 정치적 갈등이 극단화된 상태에서 복지 확대는 출발부터 큰 장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한편 우리 국민만의 복지확충 구호는 자국민 이기주의와 환경파괴, 가난한 나라 노동자들을 희생시킨 대가로 얻어질 위험이 크다. 우리는 대체로 서유럽 국가를 이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지구화 시대에 한 나라만의 복지는 많은 결점을 안고 있을뿐더러 실현되기도 어렵다. 더욱이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인류는 그간 추구해온 문명의 노선 자체를 재고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 정말 살 만한 나라, 품위있는 나라, 인류 문명에 기여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공정·공평의 원칙이 지켜지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일의 첫걸음은 ‘시장’이라는 이름하에 ‘경쟁력’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해도 좋다는 오늘날의 사이비 신앙의 미망에서 깨어나는 일이다.

전두환 정권이 ‘정의’라는 말을 참 우습게 만들었고, 이 정권이 어이없게도 ‘공정’을 운운했지만, 사실 ‘공정’ 없는 복지 담론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가장 불공정한 일을 저지른 세력이 또다시 재기해서 밥솥의 누룽지까지 마저 혼자 긁어 먹을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 있는 집단은 가장 불공정한 방식으로 오늘의 돈과 권력을 얻게 되었다는 점이 우리를 좌절케 한다. 재벌의 불공정,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부자 언론의 불공정, 법원과 검찰의 불공정, ‘명문’사립대학의 불공정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각 기관의 신뢰지수는 언제나 그 기관의 힘과 반비례하는 현상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비정규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는 죽도록 일해도 가난과 파산을 면할 수 없고, 청년들은 낙담하고 있다. 오늘 한국 사회의 사실상 황제인 재벌과 그들의 시장 지배를 감시해야 할 정부와 법원의 재벌 봐주기야말로 시대적 해결 과제의 선두에 있다.

게다가 그 형성의 이력이나 법적 지위를 볼 때 명백히 공적 성격을 갖는 주식회사를 사유물로 간주하여 3대에까지 물려주는 일부 재벌기업의 행태는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부자가 되는 사람은 따로 씨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주었다. 오늘 2040세대의 78%는 부모의 지위가 계층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패자부활이 없는 사회,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는 사회가 그들이 보는 한국이다. 이처럼 사회가 여지없이 파괴되었는데, 예산으로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불공정에 신음하고 있는 99%의 사람들이 일할 의욕을 느껴야 한다. 우선 망가진 사회를 바로잡은 다음 그 바탕 위에서 우리는 복지·평화·공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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