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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06 19:13 수정 : 2012.03.06 19:13

장귀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

지금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어떻게 보게 될까? 무식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취미가 역사책 읽는 것이라, 쉴 때면 도서관에 가 동양사와 서양사 서가들을 둘러보며 재밌는 책을 골라 오는 게 즐거움이다. 책을 읽다 보면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비슷하여 ‘역시 인지상정이네’ 하고 슬몃 웃음을 지을 때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나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불합리해서 ‘역시 옛날 사람들은 무식하고 잔인하군’이란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옛날 사람들은 태어날 때 결정된 신분에 따라서 살아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도 없고 윗신분에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갔다했다. 예외적인 경우나 시기가 없진 않았지만, 근대 이전엔 동서 막론하고 이런 세상이 보편적이었다. 옛날에도 정교한 논리가 있었다. 이런 일들은 신이나 하늘의 ‘섭리’로 정당화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세상 이치려니 했다. 지금 근대 민주주의와 합리주의가 ‘상식’이 된 눈으로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방식이건만.

사실 이런 얘기야 역사책 읽기 취미와 상관없이, 초중등생도 아는 얘기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초등학생 때는 더 황당해했다. “아니, 옛날 사람들은 왜 그렇게 멍청했대?” 옛날 사람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고 지금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커서 역사책을 읽으면서는 종종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이 시대 세상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후세 어린이들은 어떻게 보게 될까. 내가 어렸을 때 전근대사회에 대해 느꼈던 것처럼 무식하고 멍청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베버는 근대를 주술적 사고에서 벗어나 합리성을 갖추고 그에 의해 작동하는 세계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정말 지금 사회는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사람들은 주술적 사고에서 벗어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며 죽어나는데, 그 옆에서 일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실업자 신세로 전전긍긍한다. 여섯시간씩 나누어 일하면 둘 다 좋은 거 아닌가. 산수도 못하나. 어느 날 갑자기 금융위기라더니 회사들이 줄줄이 문 닫고 많은 사람들이 소득을 잃어 생필품도 제대로 못 산다. 사무실도 공장도 일할 사람도 그대로인데 생산을 해서 나눠 쓰면 되지 않나. 미국에서 그냥 버려지는 음식물만으로도 아프리카에서 굶주려 죽는 사람들을 모두 먹일 수 있다. 대서양을 건널 배가 없나. 지금 운송수단이 콜럼버스 시대보다 못하나.

안다. 이 모든 게 자본의 흐름 때문이다. 자본이 이윤을 더 많이 내기 위해 장시간노동과 실업이 병존하고, 자본이 철수하면 멀쩡하던 산업이 망하고, 이익이 나지 않는데 굶어죽는 사람에게 먹거리를 줄 이유가 없다는 거다. 논리는 아는데, 그 결과의 현상이 참으로 비합리적이다. 적어도 근대 민주주의와 합리주의의 눈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다. 자본의 섭리는 원래 그러하고 자본이 없으면 세상은 망하므로. 이런 논리는 지금은 어린이들도 비웃는 옛날옛적 하늘의 섭리라는 주술적 사고와 뭐가 다른가.

역사책을 읽다 보면 계속 느끼는 게 있다. 지금 세상은 옛날 사람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걸 실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인 섭리를 믿을 때 터무니없는 공상이라는 비웃음과 탄압을 받아가며 상상하고 노력하고 투쟁을 한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자주 상상을 한다. 백년이나 이백년 후에 어린이들이 역사를 배우면서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그 역사 수업의 내용을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장귀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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