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08 19:20
수정 : 2012.03.08 22:10
|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
저 어르신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자기 몸에 불을 질러야 했겠느냐
모두, 우리의 책임이 아니겠느냐
경내야, 탈핵 희망버스 참가비 계좌를 확인하다 네가 일하는 ‘인권교육센터 들’의 후원금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청소년인권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재정도 넉넉하지 않은 단체에서 먼 곳의 싸움에 연대해주는 마음이 고마워서였겠지. 지금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 식구들은 온 힘을 다해 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지만 반응은 아직 뜸하다. 강정마을 상황이 그리 긴박하게 돌아가고, 다가오는 선거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이리 많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가슴 아픈 싸움의 현장이 지금 이 나라에 어디 한두 군데냐. 앞으로도 지금처럼 외롭게 싸워야 할 각오는 하고 있다.
경내야, 아직도 나는 지난 1월17일 새벽을 잊지 못한다. <오늘의 교육> 편집회의를 끝내고 휴대전화를 켰을 때, 부재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알리는 휴대전화 진동이 얼마나 길게 이어지던지. 일흔네살 할아버지의 분신자결을 알리며 급히 현장으로 와 달라는 다급한 메시지를 확인하던 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서둘러 밀양으로 내려오는 첫차를 탔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 고향, 내 삶터에서 벌어진 사건, 송전탑과 핵발전소, 포기를 모르는 불퇴전의 집단과 벌여야 할 싸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또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깊이를 모를 아득함에 젖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나열들은 솔직한 것이 아닐 것이다. 7년째 진행된 이 싸움에 나 또한 방관자였다는 사실, 그러면서도 지역활동가랍시고 집회니 회의니 쫓아다닌 꼬락서니가 초라했다. 저 어르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자기 몸에 불을 질러야 했겠느냐. 저 70대 80대 노인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7년 동안 저렇게 싸워야 했겠느냐. 모두, 우리의 책임이 아니냐. 핵발전소, 펑펑 써대는 전기, 무관심과 방관, 그리고 정치적인 나약함. 그날 나를 괴롭힌 솔직한 감정은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도 그 후 이 싸움에 함께하게 되었다. 밀양의 송전탑은 신고리핵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건설된다는 사실, 신고리 5~6호기 신규 증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수명이 다해 덜덜거리는 위험천만한 핵폭탄 덩어리 고리 1호기를 폐쇄하면 이 송전탑 공사는 자동으로 폐기된다는 사실에서, 이 싸움은 탈핵 투쟁과 맞물릴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경내야, 핵발전에 대한 비판은 위험천만한 에너지라는 사실에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핵발전에는 우리들 삶의 얼개가 화인처럼 박혀 있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웃 나라에서 벌어진 재앙이 1년이 넘도록 사그라들기는커녕 더욱 확산되는데도 핵발전 르네상스를 외치는 얼간이들의 행태를 지금 우리가 용인하고 있는 것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기포기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얼마나 퇴폐이며, 무책임이냐.
경내야, 요즘 우리는 지금 일주일에 두 번씩 시내 한복판에서 촛불집회와 미사를 이어가고 있어. 어제저녁 촛불집회 때 우리 지역 노래패 식구들과 함께 <고향의 봄>을 따라 부르며 훌쩍이는 내 앞줄의 어느 할머니를 보았다. 뭉클한 감동과 슬픔이 스쳐가더구나. 그리고 나도 모르게, 짧은 시간, 신을 찾게 되었다. 평화의 하느님, 의로운 하느님을 말야.
희망버스라는 고마운 이름을 김진숙·송경동 이런 분들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빚지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분들께 감사드린다. 이제 탈핵운동도 희망버스를 타고 돌아다녀야 하리라. 희망텐트, 희망버스, 희망의 연대가 온 나라에 퍼져가기를.
경내야, 오는 17~18일 시간이 되거들랑 밀양으로 오너라. 그럼, 안녕.
탈핵 희망버스 트위터 @puppy7190
페이스북 nonuclear765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