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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18 19:13 수정 : 2012.03.18 19:13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떻게 왜
대표하는지 분명한 정치인이
많아져야 민주주의가 좋아진다

왜 선거에 출마할까. 최근 공천을 받은 한 사람은 시대적 책무를 강조했다. 지금 정부야말로 “악의 축”이자 “유일하게 기여한 게 있다면 국민을 각성시킨 것”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 못하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된단다. 금년 두 선거에서 압승해 “2013년을 새로운 시대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는데, 정작 왜 본인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또다른 사람은 조합원 2만5000명의 공기업 노조를 이끌던 전직 위원장으로, 최근 한 진보정당에 비례대표후보 공천 신청을 했다. 이유를 묻자 “안 그러면 죽을 것 같았다”라고 답한다. 위원장 시절 그는 구조조정에 맞서 파업을 주도했다. 그로 인해 200명 가까이 해고되고 1만3000명이 징계를 받았다. 그 역시 해고와 더불어 7개월을 구치소에 갇혀 있었다. 그 안에서 해고와 징계, 손배소 이야기를 무기력하게 전해 듣자니 미칠 것 같았고 막막한 생각에 죽기라도 하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죽을 생각을 하니 너무 두렵고 무서웠단다. 힘들게 그 시간을 견디고 출소한 그는, 위원장으로 나설 때 “이번까지만 하고 더 이상은 가족들을 외롭게 하지 않겠다” 했던 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경남 거창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작년 말, 함께 싸우다 해고된 지부장 한 명이 자살을 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죽을 수도 살 수도 없었다. 결국 “위원장이 조합원을 위해 뭐라도 하고 있다는 이야기라도 들어야 살겠다. 아니면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를, 그의 처는 “치유의 과정”으로 이해하며 서울로 떠나보냈다. 공천 가능성을 묻는 내게 그는 “어려울 것”이라 답한다. 그렇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을 거란다. 야당들과 정책 협약도 하고 지지 후보를 정해 뛰겠다고 한다. 법에 호소해서도 해결이 안 된 잘못된 해고와 징계를 정치의 힘으로 되돌리겠단다. 조합원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단다.

민주정치에서 대표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본다. 한 사람은 시대를 대표하고 국민을 대표하고 악에 맞서 옳음을 대표하려 한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조합원을 위해 싸우겠다는 것, 오직 그것을 말한다. 전자는 “국민 의식의 각성”을 중시한 반면, 후자는 그저 자신이 대표하는 조합원들과 “닮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들의 정서와 열정을 표현해야지 그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조합원들과 멀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국민 모두가 아니라 그 한 부분으로서 조합원과 노동을 대표하고 그들을 위한 정치의 길을 말했다.

모두를 대표한다는 것은 실상 아무도 대표하지 않는 일이 되기 쉽다. 추상적 실체로서 국민은 ‘가상적’으로 대표될 뿐,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사회의 여러 ‘부분 이익’을 대표하는 후보와 정당들의 경합 체제이다. 경합에 참여하는 부분 이익들의 내용이 분명해야 책임성도 커진다. 그래야 약자들의 이익과 요구도 표출되고 경청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민주정치의 기반이 튼튼해지고 사회 통합의 효과도 커진다. 역설적이게도, 전체 이익과 시대정신을 앞세우면 그것을 독점하고자 하는 흥분과 열정이 과도해지면서 적대와 증오의 정치가 심화된다. 그 속에서 죽어나는 것은 약자들이다. 민주주의라면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를 어떻게 왜 대표하는지를 말해야 한다고 보는 필자는, 그래서 전직 노조위원장이 실천하고자 하는 대표의 개념이 민주적 이상에 훨씬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정의의 사도’보다 ‘누구의 대표’인지가 분명한 정치인의 출마가 많아져야 민주주의가 좋아진다.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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