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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03 19:18 수정 : 2012.06.06 11:17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4할 타자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과학자 혼자 하기 힘든 이 연구를
일반인들이 모여 너끈히 해냈다

올해 초 야심차게 시작한 이른바 ‘백인천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전세계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는 왜 사라졌을까?”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백인천 프로젝트는 백인천 선수의 타율인 0.412를 기념하기 위해 4월12일 마지막 결과 발표의 시간만 남겨둔 상태다.

1871년 시작된 미국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건 1941년 0.406을 친 테드 윌리엄스 이후. 일본 프로야구에선 아직 4할 타자가 나오지 않았으며, 우리나라에선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백인천 선수가 0.412를 친 뒤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두고 야구계에선 그동안 의견이 엇갈렸다. 연봉협상에만 혈안이 돼 스토브리그에 훈련을 충실히 안 한 타자들의 나태와 게으름 탓으로 돌리며, 스포츠신문은 타자들을 맹공하기도 했다. 전문적인 마무리투수와 중간계투요원의 등장, 더블헤더 게임의 등장, 야간경기 등으로 인해 타자에게 불리해진 환경 탓도 했다.

과학자들이 이 엉뚱한 야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테드 윌리엄스가 마지막 4할을 치고 사라진 1941년에 태어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덕분이다. 그는 한 잡지에 실은 에세이에서 이 문제를 타자의 나태함이나 경기환경 탓으로 보지 않고 ‘시스템의 진화적 안정화’로 설명하는 참신한 시도를 했다. 프로야구 리그도 일종의 거대한 ‘생태계’라서 서서히 안정화라는 진화 단계를 거친다는 것, 그래서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선수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어 1할 타자도 사라지지만 4할 타자도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100년간의 미국 프로야구 결과를 분석해 타자들의 평균 타율이 증가해왔음에도, 다시 말해 타자들의 실력이 줄지 않았음에도 타율의 격차가 사라져 4할 타자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올해로 31년을 맞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까?

백인천 프로젝트는 지난 30년간의 한국 프로야구 데이터를 분석해 타자 실력과 투수 실력, 수비 실력 등이 어떻게 진화해왔으며, 과연 한국 프로야구 역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인지 통계적인 분석을 시도해본 것이다.

트위터로 모집된 55명의 일반인이 매주 모여 진행한 이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것은 모두 과학논문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아마추어 과학자’들이라는 점이다. 야구를 좋아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기에 평소 생업에 종사하면서 석달 만에 외국 잡지에 제출할 만한 논문을 완성했다는 것 자체가 쾌거라고나 할까?

웹2.0 시대가 되면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으로 상징되는 ‘전문가의 정제된 지식’보다 위키피디아로 대표되는 집단지성의 산물로서의 지식이 더 큰 의미를 가져왔다. 그런데 이번 백인천 프로젝트는 과연 집단지성이 이미 세상에 내놓은 지식을 짜깁기하는 위키피디아 수준을 넘어, 소박하게나마 과학 지식을 만드는 ‘집단연구’가 과연 가능한지를 가늠해본 시도였다.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넘어 ‘과학의 대중적 참여’가 가능한지 탐색해본 시도라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과학자 혼자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연구를 여러 일반인들이 모여 너끈히 해낼 수 있었다는 것, 일반인들의 재능이 모이면 전문적인 과학논문을 쓰는 데 부족함이 없는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프로젝트를 통해 55명이 얻은 교훈이다.

그렇다면 연구 결과 한국 프로야구에서 앞으로 4할 타자는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제2의 백인천 선수를 기대할 수 있을까? 4월12일을 기대하시라.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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