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04 19:42
수정 : 2012.04.0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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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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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위로해주던 여섯살 조카
영어 못읽는다며 스트레스 받아
선행학습 금지 공약은 없나요?
슬픈 일이 있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있는데 꼬마조카가 다가와 무릎 위에 안기면서 “언제까지 울 거예요?” 걱정스레 묻는다. 아, 여섯살짜리 꼬마의 이런 위로법!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서 젊은 날의 ‘진보’를 훨씬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세상 모든 부모의 원초적 사랑이 아마도 세상을 진보시키는 원동력이 아닐까.
동남아에 출장 갔을 때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제 우리 아이들을 저렇게 구걸시키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이야 하고 생각하다가 현지 아이들을 생각하여 몹시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어떤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를 위로하던 여섯살 꼬마친구랑 슈퍼에 갔을 때 낯선 조리기구 앞에서 꼬마친구는 “장난감 칼인가 봐” 하며 신기해하였다. “뭐라고 썼는지 설명서 읽어봐” 하고 다른 코너를 구경하고 있는데 잠시 후 꼬마친구가 낭패한 표정으로 내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이었다. “나 영어 글씨 아직 못 읽어요.” 알고 보니 수입 조리기구였다.
그의 부모가 “취학 전 학원교습은 아이의 교육과는 상관없는 부모의 취미생활일 뿐”이라는 매우 담대한, 혹은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는 아직 영어를 못 읽는데, 유치원 모든 친구들이 알파벳은 물론 웬만한 영어단어를 꿰고 있어 그는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이란다.
그러고 보니 동네에 어린이 영어학원이 생길 때마다 소아정신클리닉도 잇달아 생겨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의 이 이례적인 교육열을 긍정적 시너지로 바꿀 수 있는 선거공약은 없을까. 취학 전 뛰어놀기를 헌장으로 하고 선행학습은 금지하는 그런 공약 없을까.
이번 총선에서 교육정책이 상대적으로 홀대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며칠 전 길을 가다가 4·11 총선 홍보 펼침막을 보았다. 유치원·중학교 무상급식 전면실시, 고교 평준화 반드시 관철, 죽전 내 혁신학교 지정 추진 등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야권 후보의 홍보물이려니 짐작했는데 펼침막 한귀퉁이에 새누리당 경기도당이라고 쓰여 있다. 아니,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라더니? 싶어 당혹스러웠다. 그래, 교육은 백년지대계, 보수·진보가 따로 없다고들 하니까. 사실 총선을 앞두고 다투어 내놓는 복지 공약, 경제민주화 공약도 전문가의 꼼꼼한 해설이 아니면 여야의 차이를 구분하기 힘들다. 여전히 구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정책대결보다 치졸한 색깔논쟁으로 시끄럽던 이전의 선거와 비교하여 복지를 두고 경쟁한다는 것은 설사 오십보백보의 싸움일지라도 일단 반가운 일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졌음을 반영하는 것일 게다. 섣불리 색깔 덧씌우기를 하거나 안보공포를 조장하려다간 오히려 전쟁세력으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단다. 다만 그 경쟁이 선거철 한표를 구걸하여 쏟아져 나오는 선심성 ‘꼼수’라면?
이즈음 저잣거리를 달구는 유행어는 단연 이 ‘꼼수’라는 말일 게다. 국민의 눈높이를 무시해도 유분수, 국사를 논하는 자리에 꼼수를 들이대니까 진정성에 목마른 국민들이 만들어낸 유행어이리라. 그런데 왜 꼼수를 부릴까. 꼼수가 통하니까 꼼수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왜 꼼수가 통할까. 반칙으로라도 경쟁에 이기고 싶은 욕망이 꼼수의 정치를 불러오지 않았을까.
이번에는 꼼수의 욕망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투표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에게 경쟁하되 룰이 공정하여 승복과 축하가 가능한 세상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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