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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08 19:32 수정 : 2012.04.08 19:32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정당 간 양극화된 경쟁은 격화되는데
시민 참여의 열정은 약해지는
이상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왜일까?

이번 선거에서도 투표 불참자의 규모가 제1당 지지자의 규모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투표율이 60%라 할 때, 제1당이 투표 불참자의 크기만큼 득표하려면 투표자 가운데 66.6%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투표율이 지난 지방선거에서와 같이 55% 수준이라면 81.8% 이상을 얻어야 한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 누가 승자가 되든 상관없이, 숨겨진 진짜 제1당은 무당파 내지 투표하는 일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시민집단이 될 것이다.

낮은 투표율은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한다. 제1당이 과반수 지지를 획득했다 해도 투표율이 낮으면 별 소용이 없다. 투표 참가율이 낮다면 시민의 동의를 그 내용으로 하는 민주적 정당성이 그 토대로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투표율은 왜 낮은 걸까? 많은 원인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간명한 주장이 말해주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투표 불참자의 규모는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치적 대안이 억압되어 있는 크기를 말해주는 지표다. 경합하고 있는 정당들의 이념적·계층적 대표의 범위가 좁은 경우가 대표적이지만, 선거제도가 부과하는 제약이 큰 경우도 투표율을 낮추는 강력한 효과를 갖는다. 비례대표제를 가진 나라에 비해 단순다수제를 가진 나라들의 투표율이 낮은 것은 그 때문이다. 단순다수제는 이중의 부정적 효과를 갖는다. 하나는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낮은 비례성의 문제인데, 그것이 야기하는 또다른 문제는 큰 정당들에 선거제도의 혜택이 편중되면서 양당제를 강화하고 그것이 다시 투표율을 낮춘다는 데 있다. 양당제 국가들이 다당제 국가들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것은 그 때문인데, 악순환의 고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양당제는 정당 간 이념적 차이 내지 정책적 차이를 좁히는 효과를 갖는다. 문제는 정책적 차이가 줄어들수록 양당제를 이끄는 상위 두 당 사이의 정서적 거리감이 극단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를 선과 악, 옳음과 그름으로 양분하는 쟁점이 자주 등장하거나 적대감의 동원에 의존하는 현상이 많아지는데, 그러면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강도가 높은 유권자들만 과대 대표되고 활성화되는 양상이 선거를 지배하게 된다. 당연히 지지하는 정당이 없거나 지지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유권자들의 소외감은 커진다.

지금 한국 정치는 이런 악조건들을 모두 갖고 있다. 중요 정책 사안에 대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약을 보면 차이보다 유사함 내지 모호함이 더 두드러진다. 양당 모두 복지를 말하고 양극화 및 비정규직 문제의 개선을 내세운다. 재벌옹호론 대 재벌개혁론이 경합하는 것도 아니고, 자유무역론 대 보호무역론의 대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양당 간 정책적 거리감은 덜 두드러진 반면 서로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자극하는 쟁점들은 끊임없이 불러들여졌다. 선거 막바지에 들어선 지금은 거의 최악의 상태가 아닌가 한다. 정당 간 양극화된 경쟁은 격화되는데 시민 참여의 열정은 약해지는 이상한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정치는 사회적 갈등구조에 상응하는 정당체제가 뒷받침될 때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정치가 내용 없이 격렬하기만 한 양극화의 구도를 갖게 될 때 고통받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념적으로나 계층적으로 다원화된 경쟁 구도를 발전시키지 않는 한 그들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조직되기는 어렵다. 대안이 억압된 대의민주주의는 허구에 불과하다. 집권파에 책임을 묻는 회고적 투표도 중요하겠지만, 그게 모든 것이 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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