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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11 22:30 수정 : 2012.04.11 22:30

조광희 변호사

내년에 우리는 어떤 정치현실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인가
그곳이 푸른 지구이기를 희망한다

당신은 아마도 지구가 인간이 살기에 딱 알맞다는 사실에 안도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산소의 존재, 적당한 온도, 오존층 기타 수많은 조건들이 일부러 맞춘 듯이 정밀하게 맞추어져 있다. ‘로또의 로또’에 당첨된 격인 이러한 지구의 상태를 신의 존재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무수히 많은 별의 상당수가 행성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통계학적으로 계산한다면 지구와 같이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의 수도 우주 전체로 보아 대단히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매우 희귀한 조건을 타고난 것은 우리의 ‘운’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좀더 유려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인류 원리’라는 논법이 있다. 그것은 “지구의 조건이 인류의 생존에 적합하여야만 인류는 존재할 수 있고, 만일 인류가 존재한다면 인류는 언제나 자신의 생존에 적합한 조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마치 순환논리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그 논리를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신이 왜 로또에 당첨되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은 로또에 당첨된 사람밖에 없는 법이다. 나아가서 지구의 조건만이 아니라 ‘자연법칙들이 왜 지금과 같을까’에 대해서까지 생각을 확장해보면, 심지어 우주 전체가 인류를 위해 마련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중력과 같은 자연법칙들과 그와 관련된 수치들이 아주 조금만 달랐어도 우주 전체가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적 생명체가 있으려면 행성이 있어야 하고, 행성이 있으려면 태양 같은 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별의 생성과 관련되는 자연법칙들과 그와 관련된 수치들이 지금과 같지 않았더라면 우주 전체에 걸쳐 태양 같은 별들이 생성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리학에 ‘인류 원리’가 있다면, 정치에는 ‘유권자 원리’가 있다. 물론 내가 명명한 사이비 원리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우리가 마주한 정치적 현실이 하필이면 현재와 같은 이유는 공동체의 유권자들이 그런 정치적 현실에 부합하는 유권자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유권자 원리’가 ‘인류 원리’와 다른 점은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규정받는 입장에서 로또에 당첨된 것을 발견하는데, 유권자는 정치적 현실과 상호 영향을 미치는 입장에서 지체된 현실과 마주한다는 점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인 지도자들, 추악한 매체들, 믿을 수 없는 사법기관을 왜 이번 밀레니엄에도 계속 보아야 하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엇이 먼저인지 말할 수는 없으나, 정치의 수준이 바로 유권자의 수준이고, 유권자의 수준이 바로 정치의 수준이다.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공동체에서, 그 구성원은 자신의 디엔에이에 정확히 부합하는 정치지도자와 정치현실을 만나기 마련인 것이다. 개표를 마친 오늘 아침에 우리가 마주친 정치현실은 정확히 2012년 봄 유권자의 수준이다. 다행스럽다면 유권자가 성숙해진 결과이고, 아쉽다면 유권자가 아직 미성숙한 결과일 따름이다. 정치현실의 현재 상태에 대한 원인을 정치인들에게만 돌리는 주장이 부당한 것처럼 모든 원인을 유권자들의 수준으로 환원시키는 것도 잘못이지만, 투표와 선거가 최종심급인 공동체에서 유권자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걸맞은 정치적 현실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2012년의 중요한 정치적 선택 중 한 가지는 이미 행사되어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어제 결정된 현실을 놓고, 연말의 더 큰 선택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다. 내년에 과연 우리는 어떤 정치적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인가. 그곳이 푸른 지구이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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