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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12 19:15 수정 : 2012.04.12 19:15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녹색당·진보신당이 받은 표는 1.6%,
이번에도 지난 20년처럼 ‘사표’
압박 속에서 또 가슴 졸여야 했다

20년 동안 이렇게 살고 있다. 내가 지지한 정당은 언제나 지지율 2~3%에 그쳤고, 선거가 끝나면 법에 의해 해산되기도 했다. 내가 지지한 후보는 그 화려한 후일담과 논평들 속에 끼지 못하고 듣는 이 없는 낙선사례를 읊조려야 했다. 1992년 총선의 민중당과 대선의 백기완, 1997년 대선의 국민승리21과 권영길, 2008년 총선의 진보신당, 그리고 2012년 총선의 녹색당과 진보신당.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과 진보신당이 받은 표는 도합 30여만표, 득표율은 1.6%다.

과격하거나 특별히 생뚱맞은 이야기를 했던 것이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고, 지금도 이 전대미문의 재앙은 이웃나라 열도의 동쪽을 거주불능의 땅으로 서서히 오염시켜가고 있음에도, 4천만의 시한폭탄 고리원전 1호기가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지금 들려오고 있는데도, ‘탈핵’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내걸고 싸우겠노라고 다짐하는 정당이 득표율 1.6%에 그친 두 정당 말고는 없었다. 선거 전의 기세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목놓아 부르짖을 것 같던 민주통합당도 표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지 정작 선거기간 내내 꿀 먹은 벙어리였다.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면 ‘비정규직’ 이야기를 빼놓는 사람이 없음에도 저 야당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굳이’ 앞장세우려 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누구나 이명박 4년을 심판해야 한다고 그렇게 목이 쉬도록 이야기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심판하겠노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 이미 저들이 선점해버린 ‘복지’라는 선물보따리를 풀겠다는 이야기, 온갖 지역개발과 돈이 될 만한 거리를 던져주겠노라는 이야기 말고, 막말 논란 말고, 이번 선거에 딱히 다른 무슨 쟁점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말이다. 시 청사를 빼앗기지 않겠노라며 삼보일배를 하는 노동운동가 출신의 진보정당 후보를 바라보는 일은 정말 심란했다.

1.6%의 두 정당이 내건 주장들을 두고 현실성이 없다고 말한다. 탈핵과 비정규직 문제와 농업 부흥보다 더 현실적인 주제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의 주장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알리려 하니 돈이 없다. 너무 원칙적이라고 말한다. 막말 논란을 일으킨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해서가 아니라, 오래된 시절 구석진 곳에서 뇌까린 이야기라고 이해하기에는 도가 지나치기 때문이다. 정치가 도덕화되는 것은 당연히 경계해야 될 일이지만, 모두가 도덕을 넘어서려 할 때 도덕의 잣대를 누군가는 붙잡고 있지 않으면 만인 대 만인의 싸움을 이성과 도덕에 근거하여 해결해야 할 정치의 공론적 성격 자체가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 넘쳐나는 이 사무치는 고통들과 그 너머의 세상을 어떻게 부드럽고 즐거운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는지, 정말 나도 답답할 따름이다.

정권의 형편없는 지체를 조롱하는 것은 쉽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는 것, 비정규직의 고통과 맞서 싸우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 한국 사회에 농업의 부흥 외에 다른 출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풍요에 ‘시달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익숙한 삶의 방식과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언제나 힘겨운 일이었다. 이 일을 좀더 힘있게 공론의 장에서 펼치기 위해 정치를 선택하지만, 정치의 관문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이렇게 어이없는 막말 파문과 선거 여왕의 위력과 정치공학과 금전의 벽이었고, 우리는 이번 선거에도 지난 20년처럼 ‘사표’(死票) 압박 속에서 또 가슴 졸여야 했다. 벌써 20년째다. 고생한 벗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위로의 술 한잔 건네고 싶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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