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22 19:17
수정 : 2012.04.2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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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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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좌클릭했다지만
진보 간판 내걸고 흉내만
유권자들과 나눌 ‘꿈’이 없다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었다. 총선 말이다. 쏟아져나온 손가락질과 비평 중에서 한 가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 있다. 민주당이 좌클릭 해서 졌다는 분석 말이다. 보수언론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 민주당의 좌클릭이 패인이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여기에 소위 ‘막말 파문’이나 ‘SNS 집단 최면’ 같은 양념이 얹어지면 그럴듯한 줄거리가 완성된다. 민주당 최고위원급 중진이나 대선 주자들 중에도 이 분석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꽤 많아 보인다. 보수언론이 분석해주고 야당 지도자들이 동의했으니 이제 답은 나온 것인가. 한국에서 진보하면 망한다?
우선 이 분석의 전제가 되고 있는 ‘민주당의 좌클릭’이 사실인지부터 따져보자. 민주당 공천이 전혀 개혁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19대 국회에 들어가서 진보 정치를 현실로 만들 만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경선에 내몰리거나, 최대한 늦게 공천을 주거나, 죽을 곳에서 공천받은 끝에 전사했다. 진보적인 법안을 발의하고 그 법안에 찬성표결해서 진보를 현실로 만들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공천 단계에서부터 판이 짜여졌는데 민주당이 좌클릭 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적어도 인물을 중심으로 본다면 민주당은 우클릭 했다고 볼 수 있다.
총선 결과를 거울삼아 중도층을 끌어안고 대선에서 승리하자고들 한다. 그러니까 지금보다도 좀더 우클릭 하자는 말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것이 대선 승리를 위한 좋은 전략이라고 가정해보자. 저절로 참여정부와 17대 국회가 생각난다. 탄핵역풍 속에 거대 여당으로 탄생했던 열린우리당은 불과 1년 만에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자멸했다. 17대 국회 초기에 4대 개혁입법을 단단히 밀어붙이는 데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 후로 숫자만 많았지 나머지 3년 회기 내내 한나라당에 끌려다녔다. 노무현의 꿈은 여당 내부로부터 날아온 ‘현실의 반격’이라는 돌팔매 앞에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이들과 나누어 가졌던 ‘노무현의 꿈’은 그렇게 해서 대선 패배와 비극적 서거라는 ‘노무현의 현실’이 되었고, 그 결과 2012년의 총선 패배와 어두운 대선 전망이라는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되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지금보다 좀더 우클릭 하자는 말이 현실적인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진보정치를 해서는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 좀더 오른쪽으로 가자는 말을 네 글자로 줄이면? ‘중도실용’이 된다.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혹시 이기더라도 별 의미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해 보았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정부는 참여정부의 흐릿한 복사본이 될 뿐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좌클릭을 한 것이 아니다. 우클릭 할 것이 뻔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진보 간판만 내걸었을 뿐이다. 이 어설픈 진보 흉내에서 빠져 있는 것은 바로 수많은 유권자들과 나누어 가질 꿈이었다. 시대의 흐름이 진보인 것 같아서 진보라고 말은 해야겠는데 그러다 진짜 진보로 보이면 표 떨어질까봐 마지못해 냈던 진보 흉내에는 꿈이 없었다. 유권자들이 진보 정치를 지지하려면 ‘아, 저 사람을 뽑으면 이런 세상이 펼쳐지겠구나!’라는 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꿈을 나누려면 재주 많은 이야기꾼처럼 진보정치가 현실이 된 세상의 이야기를 줄줄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못해 간판만 내건 진보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2002년의 노무현과 2011년의 박원순에게는 우리 모두와 함께 만들어나갈 꿈이 있었다. 2012년의 민주당에는 그런 꿈이 없다. 그러니 중도실용이나 하려고 드는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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