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24 19:21
수정 : 2012.04.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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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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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노래 한곡 수천만원
지식인의 1시간 강연은 얼마?
‘공짜’ 자문·인터뷰 이젠 사절할 터
가끔 영화사에서 전화가 온다. 준비하고 있는 과학영화 시나리오가 있는데, 과학적으로 그럴듯한지 조언을 해 달라는 요청이다. 시나리오를 세심히 살펴보고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성의껏 자문에 응하지만, 귀한 자문이라고 해서 자문료를 챙겨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나 뉴스, 과학 관련 프로그램을 위해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이나 자문을 해 오지만, 변변한 대가를 받은 적은 많지 않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전문가 출연료는 지난 10년간 거의 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경험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자주 겪는 것들이리라. 번역가 안정효 선생의 에세이를 보니, 한 달에 몇 통씩 책을 기부해 달라는 편지를 도서관으로부터 받는다는 푸념이 나온다. ‘선생님은 책이 많으니 저희에게 기부 좀 해 달라’는 간절한 편지들이란다. 책 팔아서 먹고사는 번역가에게 책을 그냥 달라는 생떼는 ‘당신은 빵이 많으니 저희 좀 그냥 주세요’라고 빵집 주인에게 애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하신다.
심지어 과학자들이 스스로에게 매기는 지식의 가격도 그다지 높지 않다. 대학의 초청 세미나료도 지난 10년간 거의 오르지 않았고, ‘과학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과학자의 당연한 의무’라며 세미나료 책정 자체를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그나마 방송에서 찾는 교수는 ‘잘나간다’는 뜻일 텐데 출연료 투정은 호사라고 지적할 만도 하다.
그래도 천박한 생각이겠지만, 과연 내 머릿속의 지식이나 아이디어, 혹은 의견은 얼마의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있다. 소녀시대가 대학 축제 때 부르는 노래 한곡의 가격이 수천만원이라면, 같은 축제에서 하는 지식인의 ‘1시간 강연’은 얼마가 적절할까? 품위를 잃을까봐 대놓고 얘기하지 않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식인의 몸값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궁금하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에 비춰보자면, 지식인들의 몸값이 낮은 건 공급 과잉 때문이리라. 교수는 전국에 널려 있고 매년 박사들이 새롭게 쏟아져 나오니, 그들의 지식에 각별한 가치를 부여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설령 나만이 할 수 있는 조언, 나만의 통찰력이 궁금해 하게 되는 인터뷰라도, ‘30분만 시간 내주시면 되는데요, 뭘’이라며 ‘내 인생의 30분’에 방송사는 돈을 지불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돈을 안 줘도 지식인들이 서로 출연하려고 난리이니, 언론사가 콧대를 세울 만도 하다.
지식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지식 나부랭이를 세상에 떠벌리는 일이라지만, 세상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천대의 경험은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졌고 출연료가 아니더라도 먹고살 수 있는 직장인인 나는 강연료를 마음 내키는 대로 부르고 하기 싫은 인터뷰를 안 하면 그만이지만, 세상엔 그것이라도 절실한 지식인들이 훨씬 더 많다. 그들은 이런 푸념도 토해내지 못할 만큼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깊다. 이런 사회적 태도를 반지성주의라 질타할 생각도, 혹은 모든 지식인들이 의사나 변호사처럼 배출인원을 줄여 지식의 단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할 마음도 없다.
다만 ‘우리 사회는 지성에 얼마의 가치를 매기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세상에 던지고 싶다. 덜 유명해지더라도 제대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인터뷰나 자문은 나부터라도 정중히 거절하리라. 또 내가 책정할 수 있는 박사후 연구원의 연봉이나 학자들의 세미나료는 내 형편의 최대치를 주겠다. 지식인들의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 세상에 대한 통찰력, 이런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 생각하는 날까지.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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