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25 19:18
수정 : 2012.04.2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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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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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선 ‘체르노빌’ 계기로
녹색운동·녹색정치 활성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는?
역사학을 전공하는 다른 학교 선생님께 책을 빌려드리기로 한 날, 이분이 꽤 큼직한 상자를 들고 찾아오셨다. 그 안에는 미역이 들어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해역 해산물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는데도 제대로 된 검사 없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불안한 주부들이 한국 남해안의 해산물을 생산자에게서 직접 구입한다는 것이다. 지인이 완도에서 미역을 생산하기에 한 상자 가져왔으니 안전하게 소비하라는 것이 그분의 당부였다. 배려와 정성이 무척 고마운 한편으로, 문제는 전인류적 차원에서 일어났는데, 개개인이 운 좋으면 안전식품을 사먹고 그렇지 않으면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을 먹는 세월이 되었구나 싶었다.
후쿠시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상기하는 이름이 체르노빌이다. 4월26일은 26년 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원전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미국의 스리마일 섬, 유럽의 체르노빌, 아시아의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로 인류는 세 대륙에서 모두 핵참사를 경험하였다. 체르노빌 참사는 소련 해체의 원인(遠因) 중 하나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체르노빌과 비교적 가까운 독일에서는 1986년 4월26일을 계기로 녹색운동이 더욱 활발해졌고(매해 이날이면 환경-탈핵 대토론이 열린다) 일반 시민들도 녹색정치에 뛰어들었다. 현재 독일 하원의원이며 녹색당 원자력정책 대변인을 맡고 있는 질비아 코팅울 의원도 그런 경우다. 그녀가 3월13일 ‘핵 없는 세계와 동북아시아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열린 동북아 여성평화회의에 참가했을 때 언론 인터뷰에 동석하여 그녀의 녹색정치 역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인터뷰는 <한겨레> 3월14일치 27면) 전원에서 농사짓고 자녀를 키우며 생태적 삶을 누려오던 그녀에게 삶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것이 바로 체르노빌 사건이었다. 그녀는 사고 당일 오후 아이들과 텃밭에서 일하다가 밀려오는 시커먼 구름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와 언론이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다. 체르노빌에서 퍼진 방사능 물질이 대기와 토양을 오염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유유자적하던 생태주의자의 분노는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녀는 탈핵 세상의 가능성에 대해 지역주민들과 토론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중앙 정치무대에서 녹색정치의 이상과 실제를 논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사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 정부의 위촉을 받아 각계 인사로 구성된 윤리위원회가 8주일간의 공개토론(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11시간 동안의 끝장 대토론을 포함) 끝에 탈원전 원칙을 제안했고 메르켈 총리가 이를 받아들여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라에서 그동안 생활 속 탈원전 운동이 꾸준히 전개되어온 덕분이다. 태양열, 풍력을 비롯한 다양한 대안에너지원을 개발하여 지방 단위, 공동체 단위로 전력을 생산하는 기술이 축적되어온 것도 중요한 자산이었다. 코팅울 의원은 아무리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도 토양이나 해양 자체가 오염되면 소용이 없다는 기본 상식을 환기해주기도 했다.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원자력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과학자를 비례대표 1번으로 내세웠고 제1당이 되었다. 핵폐기물 처리 문제가 난제로 코앞에 놓여 있는 한국 사회에서 새누리당이 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반면, 탈핵을 내건 녹색당은 정당 존립 기준인 득표율 2%에도 미치지 못해 해산의 운명을 맞았다. 유권자의 무관심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우리 사회 전반의 지적 지형의 문제가 크다. 인류가 방사능 물질을 먹고 사는 호모 라디오악티부스로 진화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원전 문제를 이대로 안고 갈 수 없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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