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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26 19:11 수정 : 2012.04.26 19:11

이창근 쌍용차 해고노동자

구속자만 96명
‘쌍용차 파업’ 수백 가정에
불안·공포는 차라리 일상이다

산골에서 자라 목욕탕 갈 일 많지 않던 나는 목욕탕을 애써 자주 간다. 부자지간 목욕탕 회동쯤은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기억이 거의 없다. 이젠 그런 추억 하나쯤 만들 수 있게 됐지만 아버지가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만들고 싶던 추억의 공간은 사라졌고, 목욕탕은 아이와 함께 추억을 만들어가는 장소가 돼버렸다. 주말에 가던 목욕탕을 어젠 평일에 갔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도 유치원을 포기한 채 함께 갔다. 동네 작은 목욕탕은 아이에겐 놀이터다. 물안경과 튜브는 아이의 목욕 필수품이다. 목욕보단 물놀이가 더욱 신나기 때문인데, 이젠 목욕탕 주인도 인정하는 동네 말썽꾸러기가 돼가고 있다. 그런데 어젠 평소와 달리 물놀이엔 관심이 없고, 온갖 재롱과 아양을 떨더니 급기야 고사리손으로 등을 열심히 밀어주는 게 아닌가. 이 아이에게서 불안감을 느낀 건 그때였다.

4월21일 쌍용차 범국민 추모대회가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열렸다. 벌써 22명이나 되는 쌍용차 노동자의 생목숨이 떨어졌다. 생지옥의 공장 앞에서 더이상의 희생자를 막고자 회사 쪽에 대화를 요구하던 과정에서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 결국 나를 포함해 2명이 연행됐고, 이후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쌍용차 파업으로 징역살이를 했기에 가족들의 걱정은 컸다. 다행히 쌍용차 사태의 해결을 바라는 많은 분들의 마음으로 16시간 만에 4000장이 넘는 탄원서가 쌓였고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유치장을 나서는 순간, 3년 전 똑같은 장소에서의 기억 때문일까, 아이는 비 오는 날 창문에 붙은 청개구리처럼 내게 착 달라붙었다. 꽉 잡은 손엔 두려움마저 배어 있었고, 불안감은 이 녀석의 나이만큼 더 커져 있었다.

이름 이주강, 허당 주강선생이라 불리는 일곱살 먹은 아들 녀석이다. 쌍용차 파업 관련 사진과 영상에 자주 보였다. 파업 이후 경찰버스의 두려움 때문에 버스를 못 탄다던 그 아이, 2년 가까이 아직도 놀이치료를 받고 있다. 내가 연행되기 며칠 전 주강이는 아빠의 이부자리를 곱게 펴고 잤으며, 또 그 며칠 전에는 아빠 베개를 베고 잤다고 했다. 경험 많은 어른들이 먹구름 몰려오면 비설거지한다지만 이 녀석은 도대체 어디서 그 불안을 느꼈을까. 막연하게 밀려오는 불안감에 이부자리와 베개를 안고 속으로 얼마나 울고 또 기도했을까를 생각하면 너무나 죄스럽고 가슴 아프다.

이런 아이와 부모가 어찌 우리 가족뿐이겠는가. 쌍용차 아이들과 어른이 겪고 있는 공포와 불안감은 일상에 가깝다. 구속자 96명, 검찰 조사 240명에 달하는 쌍용차 파업의 생채기는 수백 가정에 불안과 공포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게끔 하고 있다. 파업한 쌍용차 아빠를 빨갱이라 부르던 어느 교사의 생각 없음을 단순한 실수로 넘기기엔 쌍용차 가족들의 면역력은 너무나 취약하다. 명예회복과 원직복직은 허물어진 면역력을 키우는 응급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건강한 한 인간과 평범한 가정으로 회복되기 위해선 우리가 돌보고 가꿔 나갈 것이 너무나 많다. 보이지 않는 파괴된 일상 위에 불안과 공포는 경계 없이 우리와 동거중이기 때문이다. 대한문과 쌍용차 평택공장 앞엔 분향소가 차려졌고, 사람들이 오고 있다. 죽음을 막기 위한 노력 못지않게, 새싹들에게 가해지는 응고되지 않는 불안감의 공포 또한 절박함으로 다가온다.

목욕탕에 다녀온 주강이는 요리를 하겠다고 부산하게 움직였다. 계란프라이를 그럴싸하게 만들어 떡하니 내놓으며 먹어보란다. 케첩도 뿌리고 치즈도 넣고 양배추까지 넣은 초특급 요리를 보며 의기양양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이런 우리들의 일상의 평화다.

이창근 쌍용차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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