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01 19:25
수정 : 2012.05.0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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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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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 넘은 ‘외국인 혐오증’은
우리 사회 불안정·불평등의 징후
다양성 인정만으론 해결 안 돼
최근 한국 사회 내 ‘외국인 혐오증’이 도를 넘고 있다. 각종 ‘다문화 담론’이 매체를 뒤덮고, 인종적 차이에 대한 관용이 짐짓 점잖은 사람들의 윤리적 자세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에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표면상 외국인 범죄의 증가라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대응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띠고 있지만 내면은 훨씬 복잡하다.
필자가 보기에 외국인 혐오증은 세 가지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현대사적 체험에 각인된 ‘경계 짓기’와 ‘타자 만들기’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나/타자, 우리/적을 나누어 전자에 ‘선’을 배치하고 후자에 ‘악’을 배치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한민족’ 고유의 특성이라기보다 일제 식민지, 미군정, 전쟁, 분단, 군사독재 체제 등과 연관된다. 때로는 외세에 대한 저항을 이유로, 때로는 반공국가 건설과 국가발전 우선이란 명목 아래, 때로는 민주화를 위한 선결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계급적, 민족적, 성적 편가르기를 자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많은 ‘타자들’을 생산해왔으며, 이들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과 편견, 배제와 차별,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행위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수사 아래 정당화돼왔다.
둘째, 인종차별주의와 위계적 권력구조에 대한 급진적이며 비판적인 질문이 삭제된 ‘다문화주의’의 문제이다. 1990년대부터 대한민국 사회는 ‘다문화 현실’에 대한 아무런 인식과 준비 없이 단순히 경제적·인구학적 필요에 의해 수많은 외국인들을 초청해왔다. 단기체류 노동자에 대해서는 배척과 배제주의에 기반하고, 가부장 가족과 민족 혈통을 이어나갈 ‘자식’을 낳는 결혼이주여성들에 대해서는 ‘한민족’ 동화주의에 기반한 정책을 행사해왔다. 이에 대해 이미 많은 국내 학자들은 ‘다문화’ 없는 ‘다문화주의,’ ‘다문화주의’ 없는 ‘다문화정책’을 비판해왔다. 자문화에 대한 성찰, 타문화에 대한 배려와 인정, 융합의 자세를 결여한 다문화주의는 내국인/외국인을 가르고 이주민들 내부의 위계질서 생산을 통해 체류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국가의 관리체제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수사 아래 인종차별주의를 영속화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혐오증은 경제정의와 분배질서가 무너진 ‘현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의 정도를 반영한다. 통상 사회적 불안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었을 때 기존의 사회적 가치나 질서를 위협한다고 간주되는 조건이나 사람·집단을 집중적으로 겨냥하여 불안의 원인을 투사하는 경향이 생긴다. 극화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할 희생양이 필요해지는데 이의 표적이 되기 쉬운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일 경우가 많다. 이들은 특정한 부류로 정형화되어 죄와 악덕, 무질서, 범죄의 원흉으로 지목된다. 문제는 이로 인해 한국 사회불안의 근본 원인인 양극화, 상대적 빈곤 등의 문제는 가려지고, 경제적 기회를 박탈했다고 간주되는 또다른 사회적 약자인 이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증오와 배제, 차별과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외국인 혐오증은 불안정하고 불공정하며 불평등한 우리 사회의 현재적 징후이다. 따라서 단순히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전제되어 있는 인종적 편견과 증오,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외국인 혐오증과 혐오범죄는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 이제 혐오의 원인을 안으로 돌려서 ‘우리’ 안에 내재한 수많은 경계들을 들여다보고 이것이 기반한 역사적, 물적 토대를 해체하는 일부터 빨리 시작하자.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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