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02 19:19
수정 : 2012.05.0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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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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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층 비리에 너그럽고
비주류의 일탈에 분개하는 건
‘주류 콤플렉스’가 아닐는지
언젠가 드러나리라 심증이 무성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터질 것이 터졌다는 게 시중의 분위기다. 파이시티 건설비리와 관련하여 이른바 ‘실세 측근’들이 줄줄이 의혹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의혹이 불거지자 언론에 대처하는 모습도 유유자적, 누군가와 흥정을 하듯 거의 모든 방송사 기자에게 인터뷰를 해주면서 대통령 선거 당시의 여론조사 비용 운운하며 최고권력자를 지칭하는 말을 흘리더니 하루 만에 아무렇지 않게 착오였다며 말을 뒤집었다. 긴 영장실질심사 끝에 영장이 발부되자 이번에는 또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말로 또 한번 어딘가를 향해 ‘암구호’를 날렸다고 한다. 민간인 사찰이며 비리의혹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리던 또다른 실세는 검찰의 압수수색 전날 사무실을 옮기고 핵심 주변인물은 출국하였다고 한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드러내놓고 하는 이런 작태에 우울하기 짝이 없다.
주연급 당사자들만이 아니다. 운전기사가 돈 받는 장면을 카메라에 찍어두었다가 협박을 하여 돈을 받아냈다나, 관련된 조연급들의 사이드 스토리도 그 노골적인 몰염치의 수준이 상식을 뛰어넘기는 역시나 마찬가지다. 제각기 각자의 수준에서 나름대로 알아서 재주껏 해먹는다는 것이었을까.
비슷한 날 언론에는 늘 그렇듯 각종 ‘잡범’들이 수백만원 혹은 수천만원을 사기 쳤다가 잡혔다느니 형을 선고받았다느니 하는 기사들이 넘쳐났다. 액수만으로 죄의 크고 작음을 논할 수 없고, 또 작은 액수라 하여 죄 되는 것을 가볍게 넘기는 일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실세 측근들의 비리 의혹이 워낙 총체적이고 규모도 드라마틱하다 보니 한갓 ‘잔챙이 잡범’들이 가소로워 보일 지경이다. 도덕적 가치판단의 기준이 제멋대로 춤을 추는 느낌이다.
어찌 도덕적 가치판단뿐일까. 우리 사회 정치적 가치판단의 기준 역시 늘 이중적이다. 언론계·법조계·학계의 수구 지배블록이 워낙 강고한 탓이겠으나 기득권 집단의 웬만한 비리 의혹, 편법 의혹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던 사람들도 진보개혁인사가 관련되면 아연 호사가 수준의 왕성한 호기심으로 저잣거리의 뒷얘기에 열을 올린다. 도덕적 기대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우리의 근대는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 제 백성의 근대화 요구, 곧 동학혁명을 짓밟은 청일전쟁으로부터 시작되거니와, 뒤이은 분단과 한국전쟁은 식민지지배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대신 좌우대립의 색깔논쟁으로 가치관을 전도시켜 버렸다. 그 이후 우리 사회의 주류 세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칙과 ‘꼼수’를 동원하여 기득권을 지켜왔다. 우리 사회에서 합리적 보수가 기득권 집단의 언저리에서 종종 그들의 들러리 노릇을 할 뿐 설 자리를 찾기 힘들었던 사정이 여기에도 있으리라.
그러자 전도된 가치관 속에서 대다수 국민 역시 부동산투기와 위장전입의 꼼수 정도에는 너그러워지는 적극적 혹은 소극적 공범이 되면서 다 같이 주류 콤플렉스에 시달려오지 않았는지. 개혁세력에 훨씬 더 야박하고 냉소적인 우리 사회 분위기 역시 여기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기득권층의 비리에 너그럽고 비주류의 일탈에는 유난히 분개하는 배경에 우리의 주류 콤플렉스가 작동하고 있지는 않을까.
봄비가 흠뻑 내리더니 신록의 푸르름이 눈부시다. 내일모레면 어린이날,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상은 좀더 정의로웠으면 좋겠다. 고위층의 파렴치한 비리에 엄격할 수 있는 사회 기풍을 마련하여 물려주었으면 좋겠다.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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