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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09 19:14 수정 : 2012.05.09 19:14

조광희 변호사

언론 정상화를 위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파업은
시민들을 대신한 대리전

세상이 뭔가 이상하다는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오는 기괴한 일들에 직면하면서 파란 약과 빨간 약 중에서 하나를 먹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진실을 알려준다는 빨간 약을 선택한 네오는 그동안 살아온 세상이 ‘매트릭스’라는 이름의 가상현실임을 알게 된다. 네오가 깨어난 실제 세계에서는 인간을 지배하는 기계에 대적하여 소수의 인간들만이 힘겹게 싸우고 있다. 현실이 꿈이나 가상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은 장자의 ‘호접몽’을 비롯하여 인간의 오랜 역사 속에서 반복하여 등장한다. 데카르트는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를 일단 부정한 뒤에, 이 세계가 실재한다는 첫번째 논증으로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일상생활에 도움은커녕 방해가 되는 이런 논의는 사실 철학의 핵심 과제이며, 호기심 많은 어떤 물리학자는 ‘현실이 가상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과학적으로 검토하기도 한다. 정색을 하고 따져보면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꿈이나 매트릭스가 아니라고 엄격하게 증명하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지만, 그것을 ‘즐거운 유희’나 ‘편집증환자들의 악취미’로 단정하고 살더라도 당신의 삶에 별 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세계가 영화에서 그려진 바와 같은 ‘매트릭스’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또다른 차원의 ‘매트릭스’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세상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무수한 사건들은 어떤 관점을 통하여 정돈되어 인식되지 않으면 무정형적인 사건들의 거의 무한한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불가피하게 인간의 관점에서 세상을 인식한다. 단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극단적으로 비좁은 양계장에 갇힌 채 오로지 치킨으로 변형되어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존재하는 닭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세상은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지옥이다. 이 지구는 저주받은 걸작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처럼 단숨에 폭발되어도 할 말이 없는 행성인 것이다. 가축들이 혁명을 일으켜 그들의 관점을 우리가 수용하게 할 능력이 없으므로, 편의상 인간의 관점을 전제하고 생각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우리는 다양한 처지에 놓여 있는 인간들 중 누구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의미를 해석하며, 사건의 중요도를 분류하는가. 이때 자원과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우리를 대신하여 신문과 방송 같은 매체가 인식될 가치가 있는 사건을 선별하고 의미를 부여한 후 전달하기 때문에 매체의 관점과 선택과 해석은 우리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매체들이 최대한 중립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하지만, 매체들은 불가피하게 권력과 자본의 자장 안에서 작동하므로 그들이 우리에게 전한 모습은 세계의 실상은 아니다. 이렇게 매체에 의해 재창조된 정보에 의하여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려진 가상의 세계가 또다른 의미의 ‘매트릭스’인 것이다.

엠비정부가 그토록 무리하게 매체를 장악하기 위하여 노력한 것은 이러한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중들에게 익숙한 방송사들이 이 정부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유린되는 민주주의에 대하여 속속들이 취재하고 보도한다면 이 정부가 몇 달이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므로 언론을 정상화하기 위하여 현재 진행되는 파업은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매트릭스’에서 깨어나야 할 시민들을 대신하여 벌어지는 최전선의 대리전이다. 온갖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며 싸우고 있는 문화방송(MBC), 한국방송(KBS), 와이티엔(YTN), 연합뉴스, 그리고 국민일보의 노조원들, 당신들이 바로 ‘네오’들이다. 누가 스미스 요원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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