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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14 19:14 수정 : 2012.05.14 19:14

윤석천 경제평론가

유령 담보까지 받아주며
돈 빌려가라 노래하지만
그마저 바닥이 나고 있다

‘주택거래 정상화’란 묘한 이름의 부동산 대책이 또 발표되었다. 대체 주택거래 정상화가 뭘 말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작금의 하향 안정화된 시장이 영 불만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일주일에 몇천만원씩 뛰던 그 미친 세월을 정상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심하다. 편파·토목 정권임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표현이다.

이런 조처로 하향 안정화되어 가는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기득권이 원하는 부동산 폭등의 시대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꿈꾸는 세상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너무 위험한 꿈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부풀려진’ 세상이다. 설사 그것이 빚으로 가득 채워진 거품이라도.

지난 5년 사이 벌써 두번째 위기다. 모두 부풀려진 부채 때문이다. 미국의 민간부채로 인한 위기는 세계를 파국으로 몰아갔다. 그 파고가 잦아들 무렵 이번엔 유럽의 국가부채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통상 금융위기라 부르지만 실체는 부채위기이다.

사실 글로벌 경제는 ‘유령 담보’를 토대로 세워진 ‘부채의 성’이다. 모두 알다시피 부채의 전제조건은 담보다. 담보가 없다면 부채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신용기반의 현대경제가 얼마나 튼튼한가를 알려면 담보물의 건강성을 살펴보면 된다. 그 질은 최악이다. 실체 없는 유령에 가깝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수조달러에 이르는 민간의 부실채권을 담보로 그만큼의 돈을 풀었다. 유럽중앙은행 역시 유럽 국가의 채권을 담보로 엄청난 액수의 돈을 뿌렸다. 이들 채권은 나날이 가치가 하락하는 ‘유령 담보’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아파트는 물론 유가증권의 가치까지 하락하고 있다. 담보 유령화 역시 세계화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경제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를 방증한다.

현실이 이런데도 세계는 너나없이 부채를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늘려 경제회복을 꾀하고 있다. 좋다. 그런데 담보는? 담보의 건강성이 이 지경이니 담보가 있을 리 없다. 이미 담보는 씨가 마른 상태이다.

아니, 있기는 있다. 다만 극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부동산과 금융자산은 상위 20% 정도가 소유하고 있다. 그것도 상위 5%에 집중되어 있다. 소득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위 10% 정도만이 담보로 쓸 수 있을 정도의 가처분 소득을 갖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돈을 빌려야 할 하위 80%는 더이상의 담보물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니 세계의 부채가 더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그래서 경제가 어려운 거다. 더 버틸 수 없는 부채의 성에 그보다 더 허약한 담보물로 주춧돌을 쌓고 있는 경제가 건강할 리 없다. 이 성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유령 담보까지 받아주면서 돈을 빌리라고 노래를 하지만 그마저도 바닥이 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빌리기는 무척 쉽다. 달콤하기까지 하다. 보상도 즉각적이다. 빌리지 않고는 수년 혹은 수십년이 걸릴 소비 행위도 즉시 해결할 수 있다. 꿈에 그리던 멋진 자동차도 안락한 아파트도 더 기다릴 필요가 없다. 다리를 놓고 지하철을 건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빚과 악수를 하면 된다. 그러는 사이 고통은 미래로 순연된다. 빚을 낸다는 것은 순간의 쾌락을 위해 미래를 희생하는 행위다. 지금은 즐겁지만 그 빚을 갚아나가는 여정은 길고 고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모든 빚, 심지어는 국가부채의 비극이다. 무엇보다 작금의 세계가 처한 잔혹한 현실이다. 빚을 줄여야 할 때다. 늘릴 때가 아니다. 강요된 긴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우리는 유럽에서 목도한다. 그러니 빚 유도의 부풀리기 정책을 즉각 중단할 일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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