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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17 19:15 수정 : 2012.05.17 19:15

이창근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제는 죽음을 넘어
연대의 힘과 용기로
죽음과 이별해야 한다

지난 주말 부산엘 갔다. 부산역 쌍용차 분향소 추모대회를 마치고 다음날엔 경남 양산 솥발산으로 향했다. 벗이자 동지였던 두산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변우백 동지의 4주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특정 시기 각인된 기억이 후각마저 왜곡했을까. 양산으로 향하는 동안 포르말린 냄새처럼 아카시아 향이 코를 찔렀다. 변우백 동지는 2008년 5월16일 두산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로 지게차에 깔려 10여m를 끌려간 뒤 현장에서 사망했다. 사고 당시 현장엔 지게차 신호수도 없는 허술한 작업여건이었다. 노동재해를 막기 위해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에서 활동한 고인이 노동재해로 사망한 것이다. 원청인 두산중공업은 ‘협력업체’의 일이라며 발뺌했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너의 존재가 나의 과거였다면 너의 부재는 또다른 이와 연결의 고리”라던 선배의 추모편지글처럼 변우백 추모위원회는 매년 투쟁 사업장 후원을 한다.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고인이 나누고자 했던 마음을 살아있는 이들이 나누고 있다. 기륭과 한진 그리고 쌍용차에 이어 올해는 재능지부에 후원하기로 했다. 잔인했던 죽음의 기억이 지독한 이별의 시간을 넘어 사랑의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서울에 올라와 다시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로 향했다. 5월19일 열리는 쌍용차 범국민대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시민들에 대한 홍보와 에스엔에스(SNS)를 통한 선전활동이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22번째 죽음으로 더이상의 죽음은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로 넓어지고 확대되고 있다. 마음을 잇는 공감과 연대의 자리였던 지난 5월11일 대한문 바자회와 ‘악’ 콘서트는 쌍용차 투쟁의 질적 변화를 잘 보여줬다. 희망버스를 거치면서 투쟁과 연대의 ‘자발성’이 강해졌다는 문화연대 신유아의 말처럼 쌍용차 투쟁은 너와 나의 문제로 자리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리해고의 살인적 압박은 이젠 온 국민이 고루 느끼는 ‘공유압’이 되었기 때문이다. 양산되는 비정규직과 거침없이 밀려드는 정리해고의 문제가 어찌 개인의 저항의지만으로 가능한가. 용산과 쌍용차로 이어진 공권력에 의한 폭압적 살인진압이 어떻게 개인사의 굴곡만으로 이해돼야 하는지 깊이 돌아봐야 한다. 우리들의 무감각한 외피가 지금 죽어가는 이들의 고통과 분노를 혹시라도 막는 구실을 한다면 이참에 깨야 한다.

단 한번의 이별조차 그것을 통한 성찰은 있다. 창원 두산중공업 하청노동자로 생을 마감한 변우백의 벗들은 그와의 이별에 낙담하지 않았다. 벗을 잃은 울분과 분노를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과 투쟁 사업장으로의 조용한 연대로 전환시켰다. 쌍용차 노동자들과의 스물두번째 이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눈물과 비참함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나. 반복되는 죽음 앞에 무력감과 죄책감은 또 얼마나 깊었던가. 이제는 죽음을 넘어 사회적 연대의 힘과 용기로 죽음과 깨끗하고도 지독스런 이별을 해야 할 때다.

그사이 우리에겐 수많은 사회의 벗이 생겨났고 더이상 좌절할 이유가 사라질 정도의 연대의 힘이 충분하게 모아졌다. 5월19일 오후 4시 서울역에서 열리는 쌍용차 범국민대회는 정리해고의 아픔과 죽음을 넘어서는 사회적 힘과 성숙도를 가늠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잔인한 죽음과의 질긴 악연을 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추모 분위기에서 본격적인 해결의 방향으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살인정권 규탄! 정리해고 철폐! 쌍용차 해고자 복직!” 5월19일(토) 오후 4시 서울역 범국민대회는 쌍용차 문제 해결의 새로운 분수령이 돼야 한다.

이창근 쌍용차 해고노동자 트위터 @nomad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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