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28 19:24
수정 : 2012.05.2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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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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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군과 의병을 극히 잔혹하게 토벌하던 관군들은 일본군에게 총 한번 제대로 쏘지도 못하고 강제병합으로 하루아침에 해산되고 말았다. 임진왜란 때 임금과 정부 관료들이 허겁지겁 의주로 피난가자 나라를 지킨 것은 지방의 선비와 농민들이었다. 그런데 김덕령 장군 등 의병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자 나라를 거덜낸 임금과 관료 등 전화의 책임자들은 오히려 그를 역적으로 몰아 처형하였다. 주자학 원리주의와 명의 재조지은(再朝之恩)에 이견을 보인 내부의 반대파를 절멸시킨 노론계 지배층은 ‘오랑캐’ 청나라에 굴욕적으로 항복하고, 수십만명의 백성을 청의 노예로 만들었다. 한국전쟁기 북한의 침략에 아무런 대비를 않던 이승만 정부는 인민군에 마구 밀리면서도 허겁지겁 놀라 국내의 ‘위험’ 인물 수십만명을 불법 검속하여 학살하였고, 온 국민을 미군의 마구잡이 폭격의 목표물로 만들었다.
저항 소수파의 실수와 착오는 스스로를 붕괴시키고 그치지만, 내부의 적을 원수처럼 여긴 집권세력의 부패, 공공심의 부재는 나라를 거덜내고 온 국민을 고통에 빠뜨렸다. 나는 한국의 집권세력이 민족, 국가, 양심, 법치를 내팽개친 것이 ‘종북파’가 이들 사이비 우파를 대신해서 우파 이념인 ‘민족’을 고집한 이유라 본다. 그런데 남한의 재벌, 교회, 언론, 사학재단의 세습에 침묵하는 집단이 ‘종북파’의 북한 3대 세습에 대한 입장을 검증하겠다고?
이 정부가 벌인 ‘대북 강경론’, 미국 쇠고기 수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과정의 실책, 세금 낭비의 ‘자원외교’, 알맹이 없는 핵발전소 수출, 대중국·대일본 외교의 반복되는 실패 등을 보면 과연 이들이 국가를 운영할 최소한의 기본을 갖춘 사람들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종북파’의 위험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위험보다 집권 보수세력의 ‘국민 안보 불감증’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미치는 위험이 수십 수백 배 더 크다고 본다. 대미 일변도 외눈박이 외교를 펴다가 이란 석유 수입이 중단될 위험에 처한 일도 그중 하나다. 대중 외교 실패로 서해에서 조업하는 어부들은 중국 해적 앞에 ‘국가 부재’를 실감하고, 대일 외교의 실패로 강제징용자와 위안부 할머니도 계속 ‘국가 부재’ 상태에서 살고 있다.
사실 종북파, 종미파라는 표현 자체가 부적절하다. ‘종북’ 세력이 실제 있다고 보지만, 대다수는 한국의 국가를 신뢰하지 않아 그렇게 된 경우가 많고, ‘친미’ 세력이 있지만 대다수 ‘종미파’는 자신의 이해 때문에 미국을 따르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종북파는 다수파인 종미파의 대타이자 그림자이고, 이 둘은 우리의 덫이다.
국내외의 급격한 변화는 우리 국가로 하여금 경제, 에너지, 환경, 식량 문제에 대해 미래 지향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북핵 문제를 풀지 않고 한국이 국제사회의 주역이 될 수는 없다. 불평등과 청년실업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 원전 사태는 핵발전 위주인 우리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요청하고 있으며, 고리 원전도 위험신호가 계속 울리고 있다. 지구 환경 위기는 이제 에너지·식량 안보를 위협한다. 중국의 부상으로 지구의 권력 판도가 바뀌고 있다. 이 국내외 사안들은 집권세력이 날밤을 새우며 토론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급한 과제들이다.
이번 진보당의 자책골은 진보정치세력이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외교에 백전백패한 이 정부가 “북한보다 종북파가 더 문제”라며 ‘내부의 적’ 제거에 사활을 걸면 그것은 그들은 물론 우리 국민에게도 자책골이 될 것이다.
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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