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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29 19:15 수정 : 2012.05.30 15:09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몇달 전만 해도 다 이긴 게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기대했던 총선은 김용민 막말로 피날레를 장식하더니, 대선 레이스는 통진당 당권파의 활극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여파는 벌써 야권 잠룡들의 지지율 추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불길한 조짐은 이미 작년 10월에 나타났다. ‘무죄추정의 원칙’. 그것은 곽노현 교육감의 후보매수를 변호하는 논리이자, 민주당에서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된 후보자를 공천하는 근거이자, 통합진보당 당권파 비례대표들이 사퇴를 거부하는 명분이 되었다.

팟캐스트 열풍에 휩싸여 있던 시절 어느 교수가 “도덕성이란 보수에게 던져버리라”고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보는 그의 충고(?)에 따랐고, 결과는 새누리당의 공천이 차라리 ‘개혁’을 표방하는 민주당의 그것보다 더 개혁적이었다는 유권자들의 냉정한 평가로 나타났다.

게다가 유권자들은 ‘진보’의 민낯도 보았다. 상식 이하의 부정·부실이 진보에서 실행하는 ‘관행’이며, 다수의 완력으로 회의를 저지하는 게 진보에서 실천하는 ‘민주’이며, 의견이 다르다고 당 대표들을 폭행하는 것이 진보에서 실현하는 ‘정의’임을, 그들은 똑똑히 보았다.

진보가 죽고 개혁이 좌초하고 정권교체가 날아가도 오직 계파의 이익을 챙기는 게 유권자들이 목격한 진보의 ‘책임의식’이다. 당권파라는 이름의 막가파와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이며 그들은 진보진영에 근본적 회의를 보내고 있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를 대의하는가?’

이른바 ‘당권파’들의 생각은 분명하다. 사퇴를 거부한 당선자들이 설사 출당이 되어도, 6월까지만 버티면 전당대회에서 다시 자기들이 당권을 장악하여 얼마든지 복당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들의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이 땅의 진보는 영원히 무덤으로 들어갈 것이다. 10%의 지지율은 3%로 추락했다. 당권파들이 당을 나가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들 역시 자기들의 추한 모습을 가려줄 ‘외피’가 필요함을 안다. 그들이라고 당을 나가는 순간 바로 고사하리라는 것을 모르겠는가? 따라서 이 싸움은 아주 지루한 장기전이 될 것이다.

문제는 충분히 드러났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자명해졌다. 먼저 당내 민주주의를 확립하여 패권주의를 제도적으로 막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회계장부와 당원명부의 투명한 관리가 필요하다. 당의 혈관과 같은 장부들을 특정 계파가 독점한다면 이미 부패는 예약된 것이다.

둘째, 유권자들 앞에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사적으로 무슨 사상을 가졌는지 몰라도, 적어도 당직을 맡거나 당의 공천을 받아 의원이 된 사람이라면, 공적 발언과 공식적 활동에서는 반드시 당이 유권자들 앞에 천명한 당의 이념을 견지해야 한다.

셋째, 당의 노동중심성을 강화해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80년대 소부르주아 운동권 조직과 몇몇 명망가들의 이해가 결합한 기형적 형태를 갖고 있다. 진보정당답게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의 중심을 잡아준다면, 이런 지저분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 모든 과제가 신속하고 단호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 일을 담당할 주체가 마땅히 눈에 띄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당내에서 그나마 지도력을 가진 인사들은 공동대표단에 속해 있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모두 사퇴해 버렸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이미 진보에 대한 신뢰를 거둬버렸다. 당권파의 지루한 버티기를 지켜보며 분통을 터뜨리다가 지쳐, 쇄신의 가능성조차 회의하는 상황이다. 필요한 것은 그 회의를 떨치고 유권자들에게 쇄신의 가능성을 확신시켜줄 강력하고 단호한 리더십. 그것이 다가오는 6월에 진보의 명운을 결정할 것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화보] 아~ 그리운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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