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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30 19:10 수정 : 2012.05.30 19:10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2010년 말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는 튀니지 청년 부아지지의 분신자살은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을 23년 독재의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아랍권 ‘재스민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더 타임스>는 그를 2011년 올해의 인물로 지정한 바 있다.

그리고 2011년 12월 대낮 카이로 거리에서 웃옷이 벗겨진 여성을 경찰들이 발길질하는 집단폭행 장면이 방영되었을 때, 당시 외신들은 무바라크 퇴임 이후 군부의 등장을 우려하는 이집트의 반군부 시위가 이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리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한 세대 전인 80년 5월 광주의 거리에서 똑같이 우리가 겪었던 폭력, 저들이 앞으로 민주화를 쟁취하기까지 가야 할 여정을 생각하며 공분, 연대, 응원, 여러가지 감회로 눈시울이 뜨거웠었다. 엊그제 어린이를 포함한 시리아 비무장 시민의 학살, 이집트의 민간정권 수립 과정에서 야권의 분열, 참으로 그들이 가야 할 길은 만만치 않다.

80년 5월에서 87년 항쟁을 거쳐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룩했다는 우리의 민주주의 역시 시련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문화방송(MBC), 한국방송(KBS), 연합뉴스, 국민일보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언론사의 장기파업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후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사분규에 가압류와 손배소송을 남발하여 밥줄공안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고위층을 둘러싸고 연이어 불거지는 의혹에 정권 실세를 가리켜 ‘금융사기단’이라는 민망한 표현까지 등장하는 나날이다.

그런가 하면 야권의 약진을 기대하며 혹은 우려하며 총선 선거판을 달군 경제민주화 이슈가 총선 이후 혹시라도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질까 걱정하기도 한다. 총선 결과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멘붕’(멘탈붕괴) 상태에 빠져서 개혁의 의욕을 잃었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5년 단임제의 근원적인 ‘시스템 하자’라고는 하지만 정책 논쟁보다 계파 갈등이 정치를 대신하는 것도 기성정치에 대한 허탈감을 키우는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정치에 대한, 정당에 대한 냉소주의가 과연 누구에게 유리할까.

흔히 경제민주주의를 가리켜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한다. 그만큼 생활상의 민주주의 혹은 경제의 공정성이 민주주의의 완성도를 본질적으로 가름한다고 보는 것이리라. 사실 경제민주주의는 사회와 경제의 공정성을 높여서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지속가능한 균형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성장의 기반이기도 하다.

그런데 경제민주주의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구성원의 발언이 각자의 적극적 정치참여로 나타나야만 한다. 식민지지배에 뒤이은 분단, 강대국을 대신하여 남북이 치러낸 이념과잉의 대립, 이런 근대사의 질곡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에는 가뜩이나 ‘정치는 모리배나 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소시민적 냉소주의가 남아 있다. 이런 정치혐오는 결국 변화를 원치 않는 집단, 곧 수구 기득권집단에 유리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치적 무관심으로는 기존의 기득권 질서를 바꾸어낼 역동적 계기를 만들어낼 수 없다.

2011년 여름 세계를 놀라게 한 노르웨이 극우 청년의 총기난사 사건은 노르웨이노동당 십대 청소년 캠프장에서 일어났다. 십대들의 정당 행사라니? 우리로서는 ‘놀랄 노’자일지도 모른다. 또 영국 노동당 전당대회에서는 십대 소년이 나와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데도 노동당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하는 정치연설로 박수를 받았다.

그렇다면 경제민주주의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우리도 어릴 때부터 먼저 정치적 감수성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지지하는 정당,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내고 그래서 감시하고 격려도 하는 ‘국민 여러분의 정치’가 꽃피어야 정치의 업그레이드, 경제민주주의의 업그레이드도 비로소 가능하리라.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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