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03 19:09
수정 : 2012.06.0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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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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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트위터 데이터에서 나타나는 25:65:10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트위트와 리플라이와 리트위트의 분포가 대체로 이 비율을 따른다는 것인데,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풀어서 말하면 자기 이야기를 새로 꺼내는 것, 주변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는 것, 그리고 의견이나 정보를 남들에게 전파하는 것 사이의 비율이 대략 25:65:10이라는 뜻이다. 빠르게 변하는 트위터 공간에서도 이 비율만큼은 거의 변함없이 지켜져 왔다.
생각해보면 이 비율은 황금분할이다. 트위터에서 오가는 말 전체를 100이라 할 때 네 번에 한 번(25)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세 번에 두 번(65)은 옆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러다 보면 열 번에 한 번 정도(10)는 서로 공감하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4·11 총선을 앞두고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리트위트의 비율이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소셜 선거가 등장한 이래 네 차례의 선거에서 트위터 이용자들은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정치효능감의 상승을 단단히 맛보았다.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투표율 70%라는 다소 무리한 목표를 정해놓고 부지런히 리트위트를 해댔다.
이렇게 되면 대다수 이용자들의 타임라인은 리트위트된 비슷비슷한 메시지들로 ‘도배’가 되어버리고, 소셜미디어는 더 이상 ‘소셜’하지 않게 된다. 일방적으로 메시지가 전달되는 대중매체와 별로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투표율 상승을 견인하는 것은 투표독려 트위트와 인증샷인데, 이것도 평소 대화를 통해 친분관계가 다져져 있을 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리트위트만 해대던 사이에서는 별 효과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투표율이 오르기는 했지만 목표에는 부족했고, 다 이긴 줄 알았던 총선은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 트위터에서 많은 사람들은 ‘멘붕’(멘탈붕괴)을 호소했다.
총선 이후 통합진보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제2차 멘붕’을 가져왔다. 정권교체와 정치개혁의 에너지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트위터 민심에 등을 돌리고 오만한 공천으로 일관한 끝에 총선 패배라는 결과를 자초한 민주당에 실망하고 좀더 개혁적인 정치세력의 제도화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는데, 바로 그들이 구태의 끝을 보여준 것이다. 이때다 하면서 덕지덕지 색깔론을 칠하고 있는 세력들도 한심하지만, 그들을 비판할 의욕도 없다. 두 차례의 멘붕을 거치면서 트위터 이용자들은 갈 길을 잃었다. 그러다 보니 트위터의 정치색이 줄어들면서 리트위트가 줄고 실없는 농담과 리플라이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트위터를 규제해야 한다고 펄펄 뛰던 사람들은 지금쯤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이제 대선에서 트위터 걱정은 좀 덜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두 가지 변수에 달렸다.
첫째, 총선에서 보았듯이 트위터 민심이 아무리 도와주어도 현실 정치세력이 제구실을 못하면 효과는 반감된다. 정파가 아니라 시민과 연대해야 한다. 정파의 논리가 공천을 망치고 있던 무렵, 트위터에서는 “이제 민주당은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더불어 심판의 대상”이라는 글들이 넘쳐났다.
둘째, 트위터의 과도한 정치화를 경계해야 한다. ‘닥치고 리트위트’는 안 된다. 사람들이 진짜로 친해져야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실없는 농담과 리플라이로 다져진 친분은 진짜로 리트위트가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트위터에서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무슨 무슨 당’이라고 한다. 오늘부터 #실없는당_이라도 만들 일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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