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05 19:08
수정 : 2012.06.0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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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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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과 식사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이들의 매력에 빠진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 친근하게 대화를 풀어나가는 기술, 공감과 신뢰를 이끌어내는 능력, 인간적 매력, 이 모든 사회적 기술이 넘치는 분들이 많아 대화 자리가 늘 유쾌하다. 나처럼 낯을 가리는 사람도 한 번의 식사만으로 능히 ‘형님!’ ‘아우!’ 하게 만들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의회에서 만들어내는 정책이나 다른 당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이런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여의도에만 들어가면 그들은 거울신경세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미성숙한 어른처럼, 이익집단 간의 공감과 신뢰를 이끌어내는 능력,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합의와 타협의 미덕과는 거리가 먼 발언을 쏟아낸다.
기업인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사교술이 능하고 인간적인 풍모가 느껴지는 기업 임원들이 많지만, 실제로 그들이 회사에서 부하직원을 대하는 태도나 소비자를 바라보는 방식은 비즈니스 정글의 포식자처럼 냉정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마치 교통사고 현장의 대한민국 운전자들 같다. 평소 한없이 자상한 남편이나 아내, 더없이 인자한 부모지만, 교통사고 현장에선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가해자/피해자로 돌변한다.
법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조언 때문인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절대 상대 운전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을 다치게 하고 시간을 빼앗고 번거롭게 했어도 몸은 괜찮은지 물어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저 골치 아프게 생겼다는 표정으로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며 도로를 서성인다.
상대방의 과실이 명확한 상황에선 과장된 얼굴 표정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경미한 사고에도 전신 검사를 받으며, 여차하면 입원해 하루 일당을 챙긴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상한 마음도 풀리고 이해될 법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법률 지식만 머릿속에 들어찬 변호사처럼 비인간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몰상식한 괴물로 만들었을까?
어떤 사안을 합리적인 잣대로만 바라보는 건 오히려 쉬운 일이다. 감정적인 방식으로만 처리하는 건 차라리 편한 일이다. 하지만 합리적이면서도 감성의 끈을 놓지 않고 결정하는 것,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공감과 신뢰, 설득과 협상, 타협과 이해 같은 사회적 요소를 담아내는 의사결정은 우리 시대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성과 감성, 사회적 능력은 대뇌 전전두엽에서 처리된다. 전전두엽 중 배쪽 가장자리는 좀더 이성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보며, 가운데 부분은 감성과 사회성을 아우르며 상황을 인식한다. 이 두 영역 사이의 거리는 1㎝도 채 안 되지만, 의회나 비즈니스 정글 안에서 이 두 영역을 두루 잘 사용하는 리더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술자리에서 술을 잘 마신다고 해서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게 아니다. 골프 치는 자리에 빠지지 않고 경조사를 열심히 챙긴다고 해서 사회적 기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판단하되, 이해당사자들을 두루 살피고 공감하는 능력을 함께 갖는 것이 진정한 사회적 지능이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미안하다’는 말은 법적인 과실인정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임을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 공감과 이해에 기반하지 않는 결정, 합의 없이 저지른 행동은 몰상식임을 교육해야 한다. 합리적 이성과 사회적 감성이라는 쌍두마차가 끄는 우리의 대뇌가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 두 능력을 균형있게 사용하는 법을 길러야 한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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