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6.07 19:21 수정 : 2012.06.07 19:21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

급한 마음을 택시 미터기는 비웃고 있었다. 넉살 좋은 기사분의 이야기도, 늘어지는 오후의 풍경도 뜀박질하는 가슴을 누르진 못했다. 강연시간이 조금 늦은 탓도 있었지만 화이트칼라 노동자들 앞에 선다는 게 내겐 어지간히 거북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도착한 곳은 골든브릿지증권 노동자들이 농성을 위해 모여 있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1층. 떨리는 마음도 잠시, 길게 이어지는 박수 소리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43일째 투쟁하는 동지들의 표정치곤 무척 밝았다. 조합원 106명 가운데 육아휴직 등 12명을 제외한 94명이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이들은 소위 모래알 조직이라고 폄훼하는 금융권 노동자들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점차 넘어서고 있었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조는 오늘로 파업 47일째를 맞는 증권사 사무직 노동자들이다. ‘넥타이 노동자’들이 장기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저간의 이 회사 사정을 보면 부침의 역사였다. 브릿지 외국자본의 ‘먹튀’ 경영으로 극심한 고용불안을 겪었던 그들은 노조와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회사와 함께 경영에 참여한다. 대주주의 배임행위와 불법경영을 감시하기 위함이었고 그것을 약속했다. 회사와 노조가 ‘공동경영 약정’을 마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젠 이 약정이 투쟁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노동운동 경험이 있다던 이상준 회장은 인수 당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단체협약마저 깨고 있다. 넥타이를 맨 이들이 단체협약을 지키려 머리띠를 맨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 시작된 노조 무력화와 단협 파기는 여름 감기처럼 금융노동자들의 생존을 심각히 위협하고 있다.

다가오는 6월11일은 희망버스가 출발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으로 대표되는 탐욕적 재벌에 대한 전국민적 분노는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국회청문회 이후 13년 만에 그를 국회에 불러 세웠다. 삶의 나락으로 끊임없이 떠밀리는 900만 비정규직 문제는 더는 용인될 수 없는 문제였다. 2011년 한해 동안 10만2000명의 정리해고자는 98년 아이엠에프 이후 최고치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지금의 사회시스템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함을 알리는 지표와 상징으로 충분했다. 희망버스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열차를 개인들의 힘으로 막아선 새로운 운동이었다. 무정형의 역동적 에너지를 발산하며 즐겁고 유쾌하게 자본과 권력의 독주를 막아선 당돌한 운동이었다. 개인들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연대의 상상력이 끊임없이 샘솟았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희망버스 참가자에 대한 사법적 탄압 수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대학교수, 문화예술인, 노조간부, 일반시민, 종교인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 짓누름으로 개인의 삶을 옥죄고 있다. 사람을 살리고 인간의 가치를 확인한 사회적 연대 운동인 희망버스에 대한 탄압은 들불처럼 번지는 연대의 힘을 막기 위함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결코 모래알의 부서짐으로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돌려차기로 맞설 것이다. 모래알의 기적을 만드는 골든브릿지증권 노동자들의 힘찬 싸움처럼, 작은 별들의 금빛 은하수인 희망버스는 다시 출발할 것이다.

6월16일 우리는 여의도공원에서 대한문까지 평화적으로 ‘걷자’ 행사를 진행한다.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조합원과 함께 누구나 가볍게 걸을 수 있는 평화적인 행사다. 걷기 행사 뒤엔 1박2일의 난장을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부근에서 신명나게 열 것이다. 작은 별들의 은하수 물결을 우리는 다시 만들 것이고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이라면 능히 사람의 은하수를 만들 수 있다.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

트위터 @nomadchang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