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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14 18:48 수정 : 2012.06.14 18:48

조광희 변호사

박근혜 의원의 권력이 확대되자 과거의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준동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국회의장으로 유력시되는 하나회 출신의 새누리당 강창희 의원은 전두환의 쿠데타가 ‘우발적 기회’였다고 교묘하게 표현한 사실이 있다. 같은 새누리당의 한기호 의원은 “(5·16 쿠데타는) 역사적으로 시간이 흐른 이후에 결론적으로는 ‘구국의 혁명’일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일 뿐만 아니라 그의 정신세계를 계승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쿠데타이고, 무엇이 혁명인가. 정당화될 수 있는 반란행위란 무엇인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고, 어떤 행동의 정당성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라는 발상 자체를 반박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어떤 공동체의 법도 그 공동체의 법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행위에 미리 면죄부를 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법의 자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도덕이나 법과 같은 규범은 인간의 인위적 발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은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자연은 자연의 법칙을 무심히 따를 뿐이고 규범을 알지 못한다. 모든 당위는 인간끼리의 약속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이 고도의 실존적 정치적 결단에 따라 현재 주어진 규범을 넘어서서 행동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허무한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공동체의 법과 정치적 행동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인간은 어느 때에 자신의 행동이 현재 존재하는 규범에는 어긋나지만 결과적으로는 타당하다고 확신하고 행동할 수 있는가. 과연 그런 독단적인 태도는 어떤 조건을 충족시킬 때 정당화될 수 있는가.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는 20세기에 민주주의가 미성숙한 제3세계에 만연했던 군사적 반란 행위의 전형이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전두환의 쿠데타가 선의도 명분도 없는 가장 추악한 반란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5·16 쿠데타와 유신체제는 사실 전두환의 그것과 완전히 같은 부류임에도, 수구파의 오랜 미화 끝에 마치 다르게 평가할 여지가 있는 것처럼 윤색되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자신의 정적을 납치하여 살해하려 시도하고 시민을 수시로 고문했던 정부가 무슨 손톱만큼이라도 정당성을 가졌겠는가. 오죽하면 그의 최측근이 도저히 그 상황을 좌시하지 못하고 총구를 겨누었겠는가. 백 번 양보하여 그 시기 경제성장의 일정 부분이 그의 공이라고 한들, 그것이 다른 악행들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들은 강도가 집에 쳐들어와서 가족들을 수시로 때리는데도 배불리 먹여주기만 하면 만족하는 부류의 사람들인가. ‘구국의 혁명’이라는 수사는 파시스트 잔당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자족적이고 헛된 망상일 뿐이다.

한편 박근혜씨, 강창희씨, 한기호씨는 모두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은 “상이한 정치적 세력 간에 내전이 아니라 의회에서의 이성적 토론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겠다”고 약속한 분들이다. 쿠데타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의회주의를 부인하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의회정치를 말한다면 ‘의회주의를 부인하는 의회주의자’라는 자가당착에 이르게 된다. 이런 자가당착에 빠진 분들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고,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라는 사실과 2012년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이 무관하다고 믿는다면 당신의 뇌는 지나치게 청순한 것이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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