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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18 19:19 수정 : 2012.06.18 19:19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보통사람인 우리들은 “소유는 범죄처럼 생각된다”는 간디의 말을 실천할 용기가 없으며, “소유하는 것은 얽매이는 것이니, 자유로우려면 버려야 한다”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철학을 듣고서도 이 소유 만능의 시대에는 참 한가로운 소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많이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슬퍼하거나 좌절하고, 더 소유하려고 버둥거리다가 인생을 마친다.

그렇다고 우리가 개개인의 소유욕만 탓하면서 한탄하고 있을 수는 없다. 소유하지 못한 사람도 숨쉴 틈이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만들어져 한국과 세계를 지배한 소유권 절대주의의 철학과 이데올로기, 즉 “공유는 구성원을 게으르게 만들고, 소유권 보장과 경쟁은 효율과 생산성을 가져온다”는 신조가 이제 큰 도전을 받고 있다. 회복될 기미가 없어 보이는 미국의 장기실업, 그리스와 스페인 등 유로존의 경제위기는 모두 자본에 무한대의 자유와 권력을 부여하면 그들의 탐욕은 ‘의도하지 않게’ 사회 전체의 부로 연결될 것이라는 신조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닌가? 민영화, 유연화, 부자감세 등의 경제정책은 극도의 빈부격차를 가져와, 이제 사회의 80%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소비하고 싶어도 수중에 돈이 없게 되었고, 기업은 물건을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다.

모든 기업을 사기업으로 만들고, 그 사기업의 총수가 전권을 휘두를 수 있다면, 주인의식을 갖는 총수가 모든 결정을 신속하게 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깡그리 소유하게 만들고, 또 지배주주나 이사장의 권한을 과도하게 인정하면, 일차적으로는 사회가 망가지고, 그다음에는 경제도 망가질 것이다. 학교가 이사장의 소유물이 되면 학교이기를 그치게 되고, 언론이 ‘사주’의 소유물이 되어버리면 언론이기를 그친다. 대기업 집단이 일가의 소유물이 되면 모든 계열 중소기업과 모든 종업원들은 총수에게 예속된 존재가 된다. 최초 창업자나 소유자의 기여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조직이 거대화되고 조직이 사회를 떠나 존속할 수 없다면, 그 조직과 관련된 종업원, 소액투자자, 소비자의 지분도 있는 법이다.

오늘 대다수 한국인들은 소유자에게 절대권한을 주고 비소유자를 무권리 상태로 만드는 법과 제도로부터 고통받고 있다. 삼성전자 백혈병 사망 여성들의 슬픈 이야기, 쌍용차 노동자들의 자살, 순복음교회의 부패와 세습, 여러 사학의 비리 등을 보면 왜 한국인들이 정치적으로는 시민이지만, 실제로는 절대권력의 노예처럼 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학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현 교육부의 비리사학 옹호 정책이나, “회사에 ‘손해’를 끼친 노동자들은 그만큼의 배상금을 내야 한다”는 1990년대 이후 한국 법원의 판결은 학생과 학부모, 노동자, 소비자인 대다수 한국인들의 생존과 영혼을 파괴하는 조처들이다. 한곳에서 수십년 영업을 한 세입자들이나 청춘을 회사에 바친 종업원들도 재개발이나 구조조정에 개입할 최소한의 권리를 갖는 법인데도, 이명박 정부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을 테러범으로까지 몰아갔고 진압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소유자의 권력남용으로 인한 사회파괴, 경제파괴 행위에는 봐주기로 일관하고 있다.

소유자가 절대자유를 누리면, 비소유자는 ‘잉여’가 된다. 야권 대선후보들은 복지의 구호를 내세우기 이전에 우선 이명박 정부의 철학이자 한국 사회의 유사종교가 되어버린 소유권 만능론과 관련된 법과 제도를 먼저 문제 삼아야 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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