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25 19:15
수정 : 2012.06.2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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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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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이란 말을 넋두리처럼 할 때가 있다. 결말이 뻔한 길을 가지 못해 안달이 난 세상을 볼 때 나오는 탄식이다. 무리 지어 달리다 집단자살을 하는 레밍처럼, 인간의 역사도 광기로 가득할 때가 있다. 파시즘이 그랬고 작금의 세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파국이 분명한 길을 인류는 달려왔고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작금의 경제위기는 ‘광기 문화’(manic culture)가 낳은 비극이란 분석이 있다. 사실, 경제위기를 경제이론으로만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론이 완벽했다면 위기는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이 오늘의 현실을 오히려 더 잘 설명할 수도 있다. 영국 레스터경영대학원의 마크 스타인 교수는 이런 접근방식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는 현재의 신용위기를 ‘광기 문화’의 산물이라 본다. 그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일반적으로 개인의 광기는 부정/전지전능/승리주의/과도한 활동을 그 특징으로 한다. 집단적 광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광기 문화’에서는 문제점과 취약성은 철저히 부정된다. 건강한 방식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부정을 통해 회피한다. 전지전능 또한 ‘광기 문화’의 특징이다. 광인은 자신이 완전하다고 믿는다. 문제점과 취약성을 일종의 도전으로 인식해 조심하기보다는 완전함을 증명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승리주의로 발전한다. 승리가 지상목표가 되며 우월성 과시는 필수적이다. 과도한 활동은 위험과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다.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일종의 몸부림이다.
이 모든 증상은 위험을 증폭시키는 요소가 된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벽함과 승리주의에 물들어 위험을 키운다. 거기에 더해 과도한 활동을 통해 마지막 남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까지 은폐한다.
2008년의 신용위기는 ‘광기 문화’의 산물이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그런 문화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근 20년의 ‘배양기’가 있었다. 그 근원은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었다. 1991년 마침내 거품이 터지고 일본의 잃어버린 세월이 시작되었지만, 서구는 오히려 일본을 추종한다. 전후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리더들에게 일본 경제는 일종의 신화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품 폭발을 경고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오히려 우월성 입증의 기회로 여겼다. 신용팽창을 통한 부동산 거품을 신경제로 인식했다.
승리주의란 광기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더 강화되었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경쟁을 할 때는 일종의 브레이크 구실을 했다. 그로 인해 자본주의는 극한으로 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제동장치가 풀리면서 서구는 무한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더욱이 중국마저 공산주의 정통성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로 급속히 통합되면서 승리감은 한층 깊어졌다.
이것이 서구가 일본의 부동산 거품을 답습하며 무한 위험을 추구한 이유이다. 결과는 뻔했다. 일본이 그랬듯 서구 또한 실패했다. 문제는 이 광기와 광풍이 신흥국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한국, 중국 등도 이미 이 덫에 걸려 있다. 이들 역시 실패할 것이다.
그럼에도 광기 문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서구는 또다시 일본의 실패한 길을 답습한다. 바로 양적완화이다. 그렇게 많은 돈을 찍어냈지만 일본 경제는 아직도 깊은 수렁 속에 있다. 그런데 그 길을 서구는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회차를 거듭하며 엄청난 돈을 찍어내고 있다. 과연 서구의 양적완화는 일본과 다를까. 승리주의란 미몽은 여전하다.
광기로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광기의 시대는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미친 세월이었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 그게 문제다. 인간은 참으로 취약하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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