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26 19:13
수정 : 2012.06.2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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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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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선거부정 논란의 불똥이 정치권 전반의 국가관 논쟁으로 옮아붙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른 짚단을 쌓아놓고 불똥 튀길 기다린 사람들이 제대로 불을 지폈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에서는 연일 종북 척결, 주사파 박멸 작전에 여념이 없다. 국민들에게 야권 전체에 대한 불신과 의혹의 긴 잔영을 남기는 것이 이 작전의 최종목표일 것이다. 야당들은 이를 신매카시즘으로 규정하고 독재적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어적 논리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이 나라 정치의 근본 가치와 지향을 물어야 하고, 또 답해야 한다.
국가관, 국가이익, 국가정체성 등은 현대정치에서 우익들이 정치적 도구로 즐겨 동원해온 공익광고 주제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공동체의 보편이익을 대표할 권리를 독점하고, 경쟁자들을 공동체의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데 이만큼 쓸모있는 소재가 없다. 하지만 이런 애국의 수사들은 언제나 국민의 삶의 현실을 개선할 내실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쓸모없는 짓이 없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전국 학교에 프랑스 국기를 꽂으러 다니다가 인심을 다 잃었다.
하지만 정치에서 국가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정치인과 정치단체가 공적 권위를 주장하려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공적 책임을 져야 하고, 어떤 국가를 지향하는지를 분명히 제시하고 국민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허하게 애국만 외치고 다니는 이들은 국민의 검증으로 도태되는 것이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그런 나라가 인민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것인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게 해줘야 한다. 그때 비로소 그는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국가관을 검증하겠다고 칼을 뽑아든 이들의 국가관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게 된다. 해고자들의 자살 행렬이 끝도 없이 계속되고, 꽃다운 젊은이들이 산업현장에서 백혈병·뇌종양으로 스러져가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당신들에게 국민은 과연 누구인가? 국민을 살육한 전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사열하고, 그의 사조직 멤버였던 자가 국회의장이 되고, 군부정권의 실세들이 여권 유력 대선 후보의 자문그룹으로 활동하는 이 나라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보수의 국가관이 얼마나 부실하고 유약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목도하고 있다. 한국의 반공반북 자유민주주의는 ‘무엇이 아닌 것’, 즉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북한 체제에 반대하고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에 반대한다는 등의 부정적 정체성밖에 갖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인가, 이 나라 국민들과 어떤 가치를 나누고 지키려 하는가, 어떤 철학으로 모든 국민을 이롭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적국관만 있고, 자국관은 없다.
국가관은 공존의 질서에 대한 비전이다. 정치는 공동의 의지를 만드는 일이고, 공생과 공영을 실현하는 일이며, 목마른 이들과 물을 나눠 국가라는 이름에 값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후 독일 정치학의 설립자 중 한 명이자 ‘헌법애국주의’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돌프 슈테른베르거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일체감은 오직 자유와 참여의 권리를 만인이 함께 향유할 수 있을 때 생겨날 수 있다고 했다.
국가관을 말하는 이들이여, 북녘 동포의 참상을 가리키며 너희는 남녘에 있으니 그저 감사하라 명령하며 채찍질하지 말라. 나라 없는 난민처럼 자본주의의 정글에 방치된 이 나라 국민들 하나하나의 존엄을 다시 세우기 위해 당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말하라. 그것이 없는 국가관은 빈껍데기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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