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02 19:16
수정 : 2012.07.02 19:16
|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
오랜만에 단비가 내린다. 기다렸던 비가 오니 절 안에 핀 접시꽃들이 먼저 생기를 되찾는다. 수행정진을 짧은 시간이라도 꼭 하고 싶어서 일주일 전에 공주에 있는 마곡사로 들어왔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네 전통 사찰이 가지고 있는 고즈넉함은 해가 지는 늦저녁에 최고조를 이룬다. 도량을 가득 채우는 저녁 범종 소리와 함께 오늘은 대웅전 앞 하늘에 노오란 달님 대신 반가운 비구름이 지나간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나도 모르게 날이 쨍쨍했던 어제보다 더 차분해지고, 안과 밖이 더 잘 비추어진다.
주위가 차분하니 내 머릿속으로 올라오는 망상들 또한 고요해서 더 잘 보인다. 올라오는 생각들 하나하나에 집착심을 두고 내 생각이 옳다고 남들과 싸웠던 그 옛날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생각이 올라오든 말든 그냥 내버려두면 도량 앞 계곡물처럼 그냥 또 흘러가는 것을. 흐르지 못하게 붙잡고 앉아서 내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남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호소했던 철 없던 시절 기억에 얼굴에 잠시 미소가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중요한 것도, 그렇게 괴로운 것도 아니었던 것을. 성숙해져 갈수록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집착이 떨어져 나가면서 사실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님을 봄으로써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이치를 배운다.
저녁 공양 뒤에 큰스님께서 들어오셔서 화두 참구에 대한 법문을 해주신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지 아주 소상히 일러주신다. 나도 모르게 너무도 감사한 마음과 함께 큰스님의 가르침 하나하나가 골수에 박힌다. 그런데 앞에 앉아 있는 도반 스님은 별 감흥이 없는 얼굴이다. 난 이렇게 좋은데 저 스님은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든다. 그 순간, 아차 내 마음의 주위가 마음속 화두에 집중하지 못하고 밖으로 잠시 돌았음을 알아차린다. 지금처럼 수행 중에 하는 남 걱정은 그 생각이 아무리 고귀하다 하더라도 수행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망상일 뿐이다. 수행자는 여럿이 같이 살면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살고, 반대로 혼자 살고 있다면 마치 여럿이 같이 사는 것처럼 살라고 하신 어른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잠을 청하기 전에 도량을 잠시 돈다. 어느덧 비가 멎고 하얀 구름 사이로 달님이 살짝 얼굴을 드러내신다. 은은한 달빛 덕분에 산봉우리를 하얀 구름이 고고히 휘감고 지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이 보인다. 도량을 몇바퀴 돈 뒤 잠을 청하기 위해 내 처소로 발길을 돌린다. 엊저녁과는 달리 발밑 촉촉해진 땅이 느껴진다. 그 순간 퍼뜩 작은 깨달음이 하나 있었다. 오늘과 같은 단비는 사실 비 자체가 달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비를 받아들이는 땅이 비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단비로 느껴진 것이구나 하는 사실을 말이다. 즉 똑같은 비가 와도 받아들이는 토양이 어떤 상태냐에 따라 단비로 느껴질 수도 있고, 홍수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마도 책 출간 이후 나의 삶이 바빠질수록 수행에 대한 그리움도 더욱 강해져서 큰스님의 법문이 아주 달게 느껴진 것 같다.
잠자리에 누우니 며칠 뒤에 내가 진행해야 하는 마음 치유 콘서트가 생각났다. 사람들은 나의 서툰 진행에도 아주 좋았다고 말해주신다. 그건 아마도 내가 절대적으로 잘해서가 아니고 내 말을 듣는 분들이 그만큼 간절히 치유와 위로, 성찰과 지혜를 갈망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분들 한분 한분과의 인연이 참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모처럼 단비가 와서 달빛에 물든 도량 밖 계곡 물소리가 아주 청아하게 들린다.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