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08 19:16
수정 : 2012.07.08 19:16
|
금태섭 변호사
|
지난 몇 개월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만큼 충고를 많이 받은 사람이 있을까. 정치를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해야 한다 등등 정치 전문가나 책사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선택을 놓고 공개적으로 훈수를 뒀고, 따르지 않으면 비판을 했다. 최근에는 박근혜 캠프의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 작년에 그에게 국회의원에 출마하라고 조언했는데 거절했다며 부정적 평가를 했다.
이런 훈수가 나오는 것은 물론 높은 지지율 때문이다. 자신들이 보기에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가진 사람이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밟아야 할 순서를 따르지 않아서 그 기회를 놓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이다. 대선 출마를 빨리 발표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과연 그런 진단이 옳을까. 나로서는 이분들이 우리 정치사에 처음 나타난 ‘안철수 현상’의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스스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일이 없고 정당에 가입한 사실조차 없는 사람에게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장기간 지지를 보내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 인품이나 실력을 높이 평가해서 기존 정치판에 뛰어들라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정치가 국민의 불안과 고통을 외면하고 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욕구가 터져나오는 것이고, 그 열망이 안철수 지지로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국회의원부터 하라’고 말하는 것은 기존 정치 문법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단순히 뛰어난 한 개인이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대선 출마를 선언한 분들은 다가올 5년에 대한 나름의 설계를 제시하고 있다. 개인적인 품성에 대해서는 찬사를 받기도 하고 상당수의 지지자들이 따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이 정치에 식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누구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년간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국지적 위기가 아닌 세계적인 불황이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더이상 고도성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극심한 양극화와 실업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난한 과제가 주어져 있다. 이런 난국을 한 개인의 능력이나 특정 정파의 정책만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진함을 넘어서 사기에 가까운 것이다. 모든 국민이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통과 공감이 필요하다. 안철수 현상은 그러한 적극적 동참의 장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지 어떤 한 사람이 권력을 잡고 이끌어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안 원장에 대해 훈수를 하는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최근 일부 언론매체는 안철수 원장에게 빨리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히라고 독촉을 하고 있다. 선거에 나가려면 국민적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과거의 관념에 얽매여 기존 정치의 틀에 합류하라는 요구라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단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안철수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한 개인의 현실정치 참여나 선거에서의 승패를 넘어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회다. 미래를 대비할 새로운 가치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일을 깊은 고민 없이 가볍게 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속한 결정이 아니라 신중하고도 올바른 결단이다.
금태섭 변호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