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12 19:04
수정 : 2012.07.1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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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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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8일 밀양시장실 앞에서 765㎸(킬로볼트) 송전탑 일로 농성하던 무렵의 일이다. 몸싸움으로 땀을 한됫박이나 흘린 어르신들이 시장실 앞 복도에 주저앉게 되었다. 김밥 한줄씩 드시고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어르신들의 다리 위로 양치컵에 칫솔을 꽂은 시청 여직원들이 사뿐사뿐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화사한 양장과 알록달록한 양치컵은 어르신들의 흙빛 다리와 대조되었다. 그때 곽 할머니가 벼락처럼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우리 이래 놔두고 너거는 밥이 넘어가더나!!”
곽 할머니는 바깥어른을 경운기 사고로 잃고, 지금껏 홀몸으로 농사를 지으신다. 집도 절도 없는 자신을 거두어준 언니와 형부, 마을 어르신들과의 의리 때문에 이 싸움에 동참하게 되었다.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과 물러섬 없는 싸움을 벌이지만, 쉴 참에 닭튀김을 먹을 때는 아들 같은 공사 인부들을 불러 나누어 먹는 분이다.
작년 초겨울, 벌목 현장에서 산외면 할머니들이 짜장면을 시켰다. 채증을 당하지 않으려고 수건과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 할머니들이 한 젓가락 드시려고 마스크를 내리니, 옳거니 싶어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현장 직원이 있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단다, 이놈들아” 하며 소리치던 할머니들, 머쓱해하는 직원이 보기 안됐는지, “이리 와서 같이 짜장면 묵자”고 하셨단다. 그래서 벌목을 막던 할머니들과 그 장면을 채증하는 직원이 함께 산 중턱 벌목 현장에서 후루룩 짜장면을 먹는다.
상동면 대책위 총무이신 김 아주머니는 쉰일곱으로, 집회 현장에서 연설도 척척 해내는 멋진 분이시다. 저렇게 활동하셔서 농사는 언제 지으시나 늘 걱정되었다. 뭐라도 도와야지 싶어 쉬는 날 총무님의 고추밭에 들렀더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미 와서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마을에서 서로 번갈아가며 도와주고 있으니 걱정 마시란다.
바로 그 김 아주머니가 공사 방해로 거액의 소송을 당한 주민들을 위한 탄원서 용지를 들고 마을마다 돌리러 다니다 빗길에 미끄러져 트럭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안전띠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를 아찔한 순간이었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제야 막 의식이 돌아온 모양이다. 덥석 손을 잡는 나를 보며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다들… 미안합니더. 내 때문에…. 내 차한테도 미안코….’
차한테 미안하다는 아주머니의 말씀이 따뜻한 등불처럼 마음에 남아 있다. 농사의 벗이었고, 함께 상동면 열개 부락을 누비며 송전탑 싸움을 도와주던 트럭, 자기 잘못으로 결국 폐차되어버린 트럭에게 미안해하는 그 마음이란.
이 싸움에 끼어든 지 6개월이 흘렀다. 고달픈 순간도 적지 않지만, 나는 수시로 이런 묵직한 감동 앞에 마주선다. 핵발전소와 송전선로 건설은 국책사업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나 7년 동안의 싸움, 일흔네살 할아버지가 분신자결을 하고, 주민들이 2년째 생업을 아예 내팽개치고 품에 유서를 써 놓으면서까지 막아서는 이 극렬한 저항을 뚫고서라도, 노선 선정 과정에서부터 지금껏 벌어진 숱한 파행과 폭력을 끌어다 묻으면서 기어이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끝내 이 사업으로 몇조원의 돈을 굴리게 될 자본과의 약속, 그들 자본끼리 맺어 놓은 맹약의 권능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한수원 임직원 22명이 브로커를 끼고 범죄조직처럼 해먹다 쇠고랑을 차는 모습을 보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들 반대편에 선 우리 주민들을 떠올리게 된다. 흙 속에서 노동하는 자만의 빛나는 인간의 위엄을 지닌, 선하고 어진 이 자유인들을. 이 싸움의 본질은 돈의 노예와 자유인의 투쟁이다. 부디 이 자유인들에게 승리가 돌아갈 수 있기를.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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