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15 18:42
수정 : 2012.07.1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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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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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으려면 존엄성 있는 죽음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아테네 광장 한복판에서 머리에 권총을 쏘아 자살한 디미트리스 흐리스툴라스는 유서에 이렇게 썼다. 약사였던 그는 이제 경제위기로 무너진 국민의 삶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지중해의 환한 햇살과 탄탄한 가족 간 유대로 자살이란 단어를 몰랐던 그리스였는데, 남유럽 위기 이후 언론은 거의 매일 자살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외국 언론에는 마약중독자들이 돈이 없어 바늘을 돌려쓰다 보니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이 늘고 있다고 보도되었지만, 실상은 더 심각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위해 바늘을 돌려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자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실업수당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학자, 정치인, 공직자, 언론인, 국책연구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도한 복지가 문제라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자체 진단은 실제의 자료가 뒷받침해준다.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지출의 비율은 22% 안팎으로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오히려 2~5% 정도 낮다. 공동체가 무너져가는 급박한 상황에서 손쉬운 희생양을 찾으려는 것이 보통인데, 구조조정을 앞장서 추진해야 할 입장에 있는 관료나 정치인조차도 복지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은 분명 품위 있고 합리적인 자세였다.
그렇다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부패와 투명성의 문제가 커다랗게 존재했다는 점을 모두 인정했다.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 수당을 받는 사람이 동시에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식의 일들이 너무나 흔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기회만 있으면 세금을 회피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오히려 탈세하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어쩌다 그리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한때 세계의 문명을 주조했던 사람들답게 곧잘 수백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들에겐 “그리스 사람”과 “그리스 국가”는 별개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1832년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바이에른(바바리아) 왕 루트비히 1세의 둘째 아들 오토를 그리스의 왕으로 보냈다. 1862년에 그가 퇴위하자 이번에는 덴마크의 빌헬름 왕자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반면 “그리스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기원과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리스 사람”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그리스 국가”는 수시로 오고가는 “그들의 국가”였던 것이다. “우리의 국가”가 아닌 “그들의 국가”에 또박또박 세금을 내는 것은 실리도 명분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동안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정치인과 “복지병에 나라 망한다”는 언론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들에게 그리스는 자신들이 맞았음을 증거하는 살아 있는 사례로 보일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안에서 본 그리스의 위기는 큰 정부와 복지 지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 할 일을 하지 않는 국가에 있었다. 한국의 국가는 어떤가. 그리스인들 중에서 정부가 국민 대다수를 대변한다고 믿는 사람은 세명에 한명밖에 없다. 한국인들 중에서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불행히도 네명에 한명이다. 한국에서는 철없는 포퓰리즘 집단처럼 알려져 있는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영민한 젊은 간부가 했던 한마디가 폐부를 찔렀다. “국가를 축소(reduce)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reform)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 이것이 그리스 사태로부터 얻어야 할 진정한 교훈이다. (아테네에서)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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