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16 19:14
수정 : 2012.07.1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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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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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월 동안이나 금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모두 한국은행 덕이다. 금리는 경제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한국 경제는 그동안 참으로 평안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오해를 했다. 올린 게 아니라 내렸으니 말이다. 한국 경제에 이상이 있는 게 분명하다. 보통 금리를 내리는 이유는 경기가 좋지 않아서다. 그만큼 투자와 소비가 원활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니 인위적으로 싼 가격의 돈을 공급해 투자와 소비를 늘리려는 게 금리인하의 목적이다. 하지만 이번 금리인하의 목적은 이것만이 아닌 듯하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기준금리 인하로 인해 3년 동안 가계부채가 0.5% 정도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며 “다만 전체 가계부채의 95%가 변동금리 대출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금리인하로) 오히려 가계의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야 한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부러 부차적 효과라 강조했지만 방점은 가계의 이자부담 경감에 찍혀 있다. 그만큼 한국 가계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사실 한국의 가계부채는 폭발 일보직전 상황이다. 가계부채 1000조 시대이다. 그런데도 누구는 한국 가계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을 들먹이며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산가치가 상수가 아닌 변수란 사실을 잊고 있다. 부채는 갚지 않는 한 좀처럼 줄어드는 법이 없다. 반면, 자산가치는 고무줄처럼 유동적이다. 늘기도 줄기도 한다. 변동폭도 크다. 따라서 자산 대비 부채비율을 따져 경제주체의 건강성을 얘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자산의 가치가 경제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와 같은 ‘대차대조표 불황기’에 자산가치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디까지 쪼그라들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차대조표 불황’은 버블화된 자산(특히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때 생기는 경기침체를 말한다. 경제주체들이 자산가격 하락에 대응해 빚을 줄이는 것이 그 원인이다. 부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과정에서 소비가 줄어 불황이 시작된다는 개념이다. 더 정확히는 부채를 갚을 능력도 상실해 소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황을 말한다. 즉 부채축소(디레버리징: deleveraging)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불황을 말한다. 과거의 일본, 현재진행형인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이제 막 초입 단계에 들어선 한국을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이 정도의 금리인하가 과연 방어막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다. 없을 것이다. 부채축소 과정은 일단 시작하면 통제가 어려운 게 특징이다. 제로금리에 양적완화란 핵폭탄을 터뜨려도 쉽게 막아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일본은 수십년째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미국의 경제도 안갯속이다. 유럽은 말할 필요도 없다.
모두 부채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은 부채를 늘리지 말았어야 했다. 13개월 동안 금리를 잡아놓지 말았어야 했다. 올릴 수 있었을 때 충분히 올려 가계부채를 억제했어야 했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4% 언저리까지도 올릴 수 있었다. 다만, 부동산에 목을 매는 토건정권이 그것을 막았음을 천하가 안다.
우산이 작으면 거센 비를 막아내지 못한다. 마찬가지다. 금리인하의 폭이 작으면 급격한 경기위축을 방어할 수 없다. 그래서 경기가 좋을 때 큰 우산을 마련해 두어야 하는 거다. 충분한 금리인하의 여력을 마련해 두어야 하는 이유다. 세상만사 다 때가 있는 법이라 했다. 실기한 금리결정이 아쉬운 이유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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