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24 19:12
수정 : 2012.07.2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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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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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그런 진부한 가족 이야기인 줄 알고 외면했다. 그러나 물샐틈없이 촘촘한 권력의 그물망 속에서 한 평범한 시민이 압사당하는 상황을 은유하여 마침내 소름 끼칠 정도로 잔인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통스럽게 직면하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순간, 나는 <추적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현실을 떠나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기는커녕, 환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조롱하고 각성시키기 위해 현실을 재현하는 드라마, 도대체 인기 드라마의 기본 공식도 모르는 드라마니! 그런 드라마가 22.6%의 시청률로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우리 국민들 속에 깔린 집단적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추적자>에 내포된 문제의식들이 폭발적인 반응으로 외연화된 것은 어느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가 내건 슬로건의 인기와도 연관된다고 본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대한민국 국민들은 누구나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에 살기를 원하지만 되묻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꿈은 너와 같은 것인가, 내가 사는 대한민국과 네가 사는 대한민국은 같은 나라인가. <추적자>는 세 가지 문제의 핵심을 아주 끈기 있고도 심도 있게 파헤쳐 주었다.
첫째,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파워 엘리트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잡을 수 있는 사람만 잡는 검사, 상대가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정치인, 평민들이 뽑는 호민관에 불과한 대통령 위에서 황제 노릇을 하는 재벌 기업인들이 거대 권력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유지하면서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혁명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바뀐 것은 왕비의 남편뿐”이라는 대사가 아프게 폐부를 찌르는 것은 백홍석은 구속되었지만 재벌 회장님은 살아남아 또다른 정권에서 막후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분명 드라마틱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의 꿈은 나와 분명히 다르다는 현실이다. 대통령 후보 강동윤이 분명히 이야기했듯 “평생 동안 어느 누구도 고개 숙이지 않는 자리”, 그것이 그들의 꿈이다. 한 아이의 평범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 꿈은 먼길을 가는 큰 마차에 깔려 죽을 수밖에 없는 벌레에 불과하다. 그들은 누군가가 꿈을 이루면 누군가는 꿈을 잃어버리는 게 사회의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백홍석의 꿈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죽은 딸의 환영 같은 것이다.
셋째, 그래서 <추적자>는 서회장과 강동윤, 백홍석이 사는 나라가 같은 대한민국일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들은 분명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딛고 살고 있지만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게 두 개로 갈린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추적자>는 우리 스스로에게 냉혹하게 묻는다. 민주주의를 외치다 경제 발전의 중요성을 말하고, 집값, 땅값, 월급 등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대변할 사람을 뽑고, 논란과 의혹이 쌓이고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면 손쉽게 진실을 잊어버리는 ‘백성들’에게 네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진정 무엇인지를. 그리고 시간이 걸리면 누구나 잊어버리게 마련인 진실 하나를 붙들고 무지와 조롱, 자학과 비난이 아니라 분노를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국민의 자세를 요청한다.
몇 달이 지나 겨울이 되면 그 백성은 또 허무한 수사에 휘둘려 과거를 망각한 채 내가 아닌 그들이 꿈꾸는 대한민국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할 것인가. 조금은 의로운 검사와 조금은 각성한 재벌 딸인 기자와의 ‘연애질’, 조금은 더 정의로운 경찰과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조폭 간의 ‘연애질’에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그래도 왕비는 여전히 뒷방에서 남편만 갈아치우고 있겠지만.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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