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25 19:23
수정 : 2012.07.2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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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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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학번들하고 홍대 앞 재즈바에 갔다. “물 버린다”고 문전에서 타박 맞지 않을까 약간 긴장, 머리가 허연 드럼 연주자를 보자 일단 안도, 이윽고 우리 민요가 재즈 반주와 그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강렬한 재즈 반주에, 가성이 아닌 뱃속에서 밀어내는 센슈얼한 ‘육성’으로 좌중을 사로잡는 민요가수의 아리아리랑 메들리, 추임새와 합창으로 함께하며 삶의 고달픔을 어루만지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한여름밤에, 흑인들의 재즈와 우리의 민요 사이에는 확실히 상통하는 어떤 정열, 우수, 회한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열에 여덟은 대학을 가는 세상이라지만 학번으로 세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더욱이 한국 사회가 그나마 염치를 차리고 품격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두분의 고졸 대통령 시절이었음에랴.
다만, ‘386’(이제는 486)이라는 호명에 눌리어, 이들이 386으로 호명되던 30대의 시절이 다 지나가도록, 제대로 사회적 호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다음 세대, 90년대 학번들이 생각나서 조심스럽지만 ‘학번’ 이야기를 꺼내 본다.
중소기업을 들락거리다가 때때로 다시 알바로, 투잡이 아니라 스리잡, 대학 전공과 관계없이 이미 네댓개의 직업을 넘나들고 있는 90년대 학번의 젊은 ‘가장’은 편의점 알바한테 으레 반말을 던지는 ‘아저씨’들이 너무 싫었는데 어느덧 자신이 때로 아저씨로 불리는 것에 당황하기 시작하고, 유치원 가는 아이의 무량한 재롱에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잘나가는 직장에 다니지만 개인 시간이 없어 평일 한낮에 백화점 쇼핑하는 게 소원인 친구, 월급은 적어도 좋으니 어디든 다시 직장에 나가고 싶은 경력단절 젊은 엄마, 이들은 이제 아이 봐주고 돌아가는 친정엄마의 뒷모습에 전에 없이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인생의 경지에 들어서고 있다. 스스로 ‘부모’인 것에 한편 두렵게 감동하고, 은퇴 후 부쩍 누추해진 아버지의 대책없는 노후에 등짝이 뻐근해지는 “앞뒤 캥거루” 같은 느낌 속에서 20대 연애 시절, 철부지 신혼 초에 분해서, 슬퍼서 흘렸던 눈물과는 전혀 다른 눈물을 경험하고 있다.
“하면 된다”는 산업화 세대의 질타와 “열정이 없다”고 나무라는 민주화 세대, 그 틈바구니에서 어느새 뒤따라온 2000년대 학번 후배들은 386 선배들의 벙벙한 양복패션이 왜 저리 꾀죄죄하냐면서도 막상 자신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90년대 학번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이제는 다소 식상하기도 한 ‘멘토’라도 기대하듯이.
386을 향한 90년대 학번의 시선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학교 다닐 때 공부하고는 담 쌓았던 그들이 이런저런 자리에 상사로 선배로 버티고 앉아 ‘빵’(감옥) 살고 ‘잠수’(수배) 타던 80년대식 영웅담을 추억할 때 그래, 민주화를 위해 싸웠으니 그럴 만하다는 한편의 경외와, 곳곳에 그들만의 끈끈한 인맥을 구축하고서도 여전히 허기스러워하는 그 왕성한 행보에 분개가 교차한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 그래서 이제 인생은 육십부터, 불혹의 나이도 사십이 아니라 육십이라고들 한다. 그렇지만 어느 캠프의 ‘청년’ 조직을 오십 줄에 들어선 80학번 선배가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지경이 되자, 어라? 청년도 그들이면 우리 설 자리는? 그리스 총선에서 결선투표까지 가면서 부패와 긴축정책을 비판했던 야당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당수는 38살의 치프라스가 아니던가?
성장률 목표치를 정해놓고 고지를 점령하듯 밀어붙이던 성장주의가 시들어가고 기성 정치가 도매금으로 불신받는 요즘, 문화민주주의의 감수성으로 생활정치를 체득한 90년대 학번들이 드디어 사회적으로 호명받을 때가 아닐까.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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