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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05 18:50 수정 : 2012.08.05 18:50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언어는 그 사람의 평소 생각과 행동을 드러내준다.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언어를 절제하고 포장하려고 노력하게 마련이지만 큰 줄기는 잘 감춰지지 않는다. 때로는 숨기는 데 성공한 줄 알았던 본성이 한마디의 말실수로 드러나기도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떠오르자 주요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계정을 만들고 자신들의 언어를 남겨놓았다. 그들 중 누가 대통령이 된들 그의 언어가 쉽게 바뀔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남겨놓은 언어를 잘 보면 대통령이 된 이후에 그가 우리에게 들려줄 언어도 대략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트위터에 남겨놓은 글들 중에서 가장 파급력이 컸던 것을 하나씩 뽑아보았다. 링 위에 오른 주자들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가진 박근혜 의원의 언어를 보자. “나라의 발전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고 행복한 국민이 발휘하는 역량이 모여 국가 도약을 또 이루게 되는 선순환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행복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것이지요.” 그가 지금까지 트위터에 남긴 글 중에서 가장 널리 퍼져나가고 큰 반향을 일으켰던 글이다. 그의 언어에서 드러나는 압도적인 특징은 ‘원론’과 ‘맥락 부재’이다.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의 선순환에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문제는 ‘어떻게’인데, 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장점 중 하나는 ‘원칙의 지도자’라는 것인데, 그의 언어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원칙은 보이지 않고 원론만 보인다. 원칙은 모든 상황에 적용되어야 할 대단히 구체적인 것이고, 원론은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추상적인 것이다. 원론만을 말하는 그의 언어에는 거의 항상 현실 맥락이 사라지고 없다. 예를 들어 그의 경제정책이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라는 180도 다른 원칙을 오고가도 어차피 맥락과 상관없이 원론에만 귀 기울이는 지지자들은 일관된 것이라고 느낄 수 있게 된다. 지지자들에게 통용되는 원칙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는 사실은 원론을 반복함으로써 얻어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안철수 교수는 에스엔에스를 통해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나온 그의 화법을 보면 최근까지 그의 언어는 박근혜 의원과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어쩌다 하게 되면 여러 해석이 가능한 아주 짧은 언급만을 내놓고, 그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 맹렬하게 추리하도록 만들며, 스스로 측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 말뜻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놓는 것 등이 그렇다. 만약 박근혜 대 안철수의 구도로 대선이 치러질 경우 안철수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택할 사람들이 아직까지 ‘지지’보다 ‘비판’에 더 무게를 두게 되는 것은 이런 공통점들과 무관치 않다. 그가 누구와 함께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참여정부를 무력화시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강고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개인의 착한 심성과 뛰어난 능력만을 믿기에는 우리 모두의 삶을 결정하는 현실 정치는 너무도 엄중하다. 세상은 연대해서 바꾸는 것이지, 한 개인이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상식파라는 그의 언어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박근혜의 원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담집을 내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그의 언어를 접할 기회가 좀더 늘어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잠재적 지지자들은 그의 언어가 원론에 머물지 않고 원칙으로 향해 가는지 눈여겨볼 일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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