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09 19:19
수정 : 2012.08.0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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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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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 전 춘천엘 갔다. 친구 결혼식에서 사회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두 달 전에 받은 터라 일정 수행하듯 졸린 눈을 비비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장에서 친구들과 오랜만에 술 한잔을 했다. 이야기하며 찬찬히 바라본 얼굴들. 시간의 흐름이 물결마냥 얼굴에 조금씩 묻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독 한 친구의 얼굴이 들어왔다. 앞니는 벌어졌고 치아 전체가 뒤틀렸다. 얼굴 피부는 피곤에 절어 흘러내리듯 처져 있었다. 치아는 건강의 상태를 말해준다는데, 그동안 무척이나 고달픈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두 해 만에 보는 친구의 얼굴에 놀란 것은 내가 아닌 아내였다. 도대체 이 친구에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멀쩡하던 입가가 뒤틀렸을까. 아들 녀석에게 용돈 쥐여주며 바삐 멀어지는 친구에게 더는 물어보지 못하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바라본 무더운 하늘에 친구 얼굴이 오래도록 걸렸다.
지난 8월4일 자정이 넘는 순간, 어떤 이가 감옥 문밖으로 성큼 걸어 나왔다. 단 1초의 감형 없이 옹근 3년을 감옥에서 살고 마침내 우리 품으로 걸어온 사람. 그는 2009년 쌍용차 파업을 이끌었던 한상균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이다. 그날도 난 사회를 봤다. 지금까지 진행한 어떤 사회보다 긴장되고 설렜다. 교도소 앞에선 한 전 지부장을 맞기 위해 밤 9시부터 300명가량이 모여 문화제를 열었다. 때마침 문화제 시작과 함께 떠오르는 달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줬다. 달은 3년이란 시간만큼이나 너무도 천천히 움직였다.
마침내 우리 곁에 선 한 전 지부장. 무척 마른 모습이었다. 문화제부터 눈물을 닦던 이들의 손수건은 더 바삐 눈가를 훔쳤다. 3년 만에 듣는 그의 연설은 2009년으로 우리를 되돌려놨다. 몰려든 기자와 연신 터지는 플래시에 조금은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그동안 잘 벼린 느낌의 연설을 했다. 말랐다기보다 뼈의 무게가 줄어든 느낌의 몸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건강이 염려됐다. 한 전 지부장은 끝까지 온 힘을 다해 연설을 하고 있었다.
회계 조작에 의한 정리해고를 막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쌍용차는 2009년 공장점거파업을 벌였다.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먹튀’ 문제는 2009년 초반만 하더라도 모든 매체의 1면 기사였다. 그러나 점차 기사의 논조가 바뀐다. 파업하면 으레 등장하는 숱한 비난의 화살이 봇물처럼 노조로 흘러들었다. 여기에 공권력의 살인적 진압이 정점을 이룬다. 갖가지 신종 무기의 시험장으로 변한 쌍용차 공장. 최루액은 헬기를 이용해 농약처럼 뿌려졌고, 쌍용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테이저건의 임상시험이 이뤄졌다. 그 당시 머리 위로 쏟아진 최루액과 뺨에 꽂힌 테이저건은 기한 없는 유통으로 지금도 기억의 회로에 저장돼 있다. 기술유출 논란은 유야무야 넘어갔고, 강제적 정리해고로 인해 벌써 스물두 명이나 생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쌍용차 문제는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왜 이토록 쌍용차 문제는 풀릴 기약이 없는가.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구성이 이 궁금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새누리당 국책자문위원은 쌍용차 진압의 책임자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다. 쌍용차 문제를 모르는 초선 의원이 많아 쌍용차 소위 구성을 반대하는 환노위 의원들. 쌍용차 문제는 개별 기업의 문제라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명박 정부. 이들의 뻔뻔함을 꺾지 않는다면 쌍용차 사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새누리당 앞에서 조현오의 국책자문위원 해촉과 환노위 쌍용차 소위 구성을 요구하며 72시간 공동행동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답해야 한다!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 트위터 @nomad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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