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12 19:13
수정 : 2012.08.1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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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숙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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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벌금을 못 낸 중증 장애인운동 활동가 8명이 벌금형을 아예 거부한 채 자진구속을 결의하고 스스로 검찰청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를 잡아 가두라라며, 허울뿐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비판하며. 이들은 장애인 인권활동을 벌이다 최고 120만원 벌금형을 받고 벌금 미납으로 검찰의 수배를 받은 상태였다. 한 장애인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월 43만원 받는 내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나는 어디 가서 5만원도 못 벌어 온다. 차라리 노역 살아 벌금 물고 오겠다.” 노동, 인권, 집회·결사·표현의 자유를 모조리 ‘돈’으로 압박하면서 무력화하는 것, 이런 시민적 권리와 이해관계의 문제를 ‘범죄화’하는 것뿐 아니라 돈의 처벌을 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노동의 파업에 대해 비싼 비용 대가며 용역깡패를 사병으로 고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한편으로 손해배상 가압류로 포위해 들어가고, 시민들의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해선 온갖 벌금형으로 욱죄고. 대표적인 것이 작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김진숙을 만나기 위해 희망버스 탄 사람들에게 떨어진 수억원의 ‘벌금폭탄’이다. 거기다 최근에는 장애인의 생존권을 주장하며 집회·시위를 한 장애인들에게 벌금형을 때리고. 근데 과연 ‘법’은 이 사실을 아는지? 그들 복지 수급 대상자인 장애인들에게 그 돈은 바로 그들의 밥을 빼앗는 것이고, 이동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고, 아플 때 쓸 약을 빼앗는 것임을.
그래서 법을 문제 삼아야 한다. 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문제화해야 한다. 악법도 법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현재의 노동법과 집회·시위 관련법, 그리고 검찰 및 경찰 관련법 등 모두 문제적으로 봐야 한다. 자본의 불법 천국인 직장폐쇄, 사내하청과 파견, 용역깡패 동원, 집회의 자유를 무력화하는 거짓 집회신고, 집회·결사의 자유를 막는 경찰권의 남용, 경찰의 불법 채증, 개인정보의 무차별적인 사찰, 검찰의 기소권 남발 등. 수없이 많은 ‘법’의 사각지대, 아니 ‘법’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국가 공권력의 남용과 전횡, 그리고 불법, 위법성. 하지만 이 모두의 원흉을 단지 이명박정부로만 보지는 말아야 한다. 경비업법, 전경법, 집시법, 정보공개법, 채증 및 사찰 등 모두 한국의 양대 정당정치세력의 합작품이었다.
여하튼 이것이 작금의 민주주의 시민권의 현주소다. 말 그대로 날것 그대로의 법의 모습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곧 법이라는 것을 실증해 보이는 법집행권력. 교도소에 보내고 신체형을 가하는 것보다 돈으로 가하는 압박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더 무시무시한 형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구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역시 집회·시위하면 벌금형으로 봉쇄한다. 단지 한국은 그것을 더욱 교과서적으로 철저히 그리고 사회적 저항이나 저항에 대한 지원 없이 국가와 공권력, 그리고 사법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는 ‘시민사회’의 몫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에 대항한 싸움을 하기보다 잿밥, 그리고 선거정치에 더 관심 있는 ‘시민사회.’ 하지만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순간은 한 번의 ‘선거’가 아니라 이런 상황이다. 기본적 시민권을 형해화하고 해제시키는 국가권력의 폭력과 남용에 대해 더욱 처절한 비판과 저항, 감시가 필요하다. 당사자들의 물러서지 않는 단호한 태도,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는 태도와 지식인들, 전문가들의 조력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작은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아야 큰 싸움에서도 이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선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거는 단지 그 최종적인 그리고 부수적인 표현일 뿐이다.
권영숙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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