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8.13 19:18 수정 : 2012.08.13 21:28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약 2주 전 제주에서 올여름 마지막 ‘마음 치유 콘서트’를 잘 끝내고 서울로 올라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바로 앞사람이 큰소리로 항공사 여성 직원에게 무언가를 따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본인 가족들의 비행기 예약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 보다.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더니 신분증이 담긴 지갑으로 카운터를 탁탁 치면서 “니네가 그러면 진작에 말을 했어야 되는 거 아니야” 하고 반말을 툭툭 했다. 잘 차려입은 옷과는 대조되게 이 30대 남성의 얼굴엔 시종일관 짜증이 가득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항공사 직원은 그 남성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순간순간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짜증나는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특히 올여름처럼 기온과 불쾌지수가 유난히 높았던 때에는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거나, 아니면 주위에서 짜증을 부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독 많이 보게 된다. 우리는 왜 관계 속에서 짜증을 내는 것일까? 승려라서 그런지 그런 감정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그러한 감정표출의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데 그 원인들이 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지금 해주지 않는다고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마치 어린애처럼 이유가 어찌되었든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대로 해 달라며 짜증을 낸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도 상대가 못해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혹은 안전이나 회사 규정상,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상대가 해주고 싶어도 못해주는 경우도 있게 마련인데, 우리는 우리의 바람만 눈에 보이고, 정해진 규칙 따위는 나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가 정말로 그렇게 특별할까?

막상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니, 아까 내 앞에서 여직원에게 짜증을 부렸던 그 남성이 자신의 가족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놀라운 것은 언제 그 여직원 앞에서 그런 행동을 했나 싶게 정말로 인자한 얼굴을 하면서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보는 듯했다. 아, 그렇구나. 자기의 관점에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자기 자식들 앞에선 저렇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자애로운 사람이 되는구나!

어른이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였을 때 본인의 입장에서만 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관점에서도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관점 바꾸기’(Perspective-taking)라고 한다. 이 능력이 오작동을 일으켜서 가끔 보면 내 관점에서만 세상을 보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상대에게 짜증을 낸다. 항공사의 직원은 결코 그 남자 손님을 일부러 골탕먹이기 위해서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 것이다. 직원도 지켜야 하는 규칙을 지켜가면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내게 고민을 상담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관점 바꾸기만 제대로 되어도 그 고민이 풀렸을 텐데 하는 일이 많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관점에서 한 번도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고, 아내는 남편의 관점에서, 부모는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질문을 한다. 내 관점에서만 그들을 바라보며 판단하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고 소통이 어려운 것이다. 살면서 관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올 때 우리 기억하자. 지금 상대는 단지 그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맡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란 사실을. 그리고 나의 경우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는 진실을.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