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14 19:16
수정 : 2012.08.14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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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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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났다. 이념과 계층, 종교를 넘어 잠시나마 모두가 하나 되어 얼싸안고 서로 공감하며 울고 웃었다. 그러나 17일간의 꿈이 끝나고 우리는 현실로 돌아왔다. 실제로 밤잠을 설쳐가며 비몽사몽 시청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척박한 현실을 한순간이나마 잊게 해주는 환각작용을 했기에 올림픽은 달콤한 ‘꿈’에 다름 아니었다. 현실에서 상처받은 나 자신을 위로받고 싶었고, 다시 깨어 마주하는 현실이 두려웠기에 우리는 꿈속에서 더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선수들의 땀방울과 피눈물의 결과가 인정받는 바로 그 순간에 감동했던 것은 외면하고 싶었던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우회적 보상심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올림픽에 배태된 두 가지 유감쯤은 ‘유연한’ 자세로 넘어가 주었다. 첫째는 조금은 의식 있는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즉 서구 백인들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제국주의의 위용을 뽐내기 위해 치러져 왔던 올림픽, 민족주의가 제각각의 색깔로 불을 뿜고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승리가 축포를 울리는 장으로서의 올림픽이라는 비판쯤은 잠시 접어 두었다. 30여년 전 인도에서 유독가스 유출로 3만명 이상이 사망하여 역사상 가장 큰 산업재해를 일으킨 유니언카바이드사(UCC)의 지분을 100% 소유한 다우케미컬이 런던올림픽 공식후원사라는 불편한 진실에도 두 눈 질끈 감았다. 다 지난 일이고 남의 나라 일이니 관심 밖인 것은 당연하다고 정당화해 보았다.
올림픽 보도태도와 해설방식에 대한 두 번째 유감도 감수해 주었다. 해설은 하지 않고 소리만 지르고, 잘해야 한다는 기대와 의무만 강조하거나, ‘이건 아니죠’라고 연신 선수들의 잘못을 일일이 지적하는 해설자들도 다 용서해 주었다. 간혹 거슬리는 사회자의 인종차별적인 발언, 육상경기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숭미주의적 멘트, 이젠 전통이 되어버린 자민족중심주의적이고 남녀유별적인 보도행태도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 주었다.
그러나 올림픽 기간 동안 가려졌던 문제들, 잊혀졌던 이야기들은 넘어가서는 안 될 현실에 대한 유감으로 다시 다가온다. 광범위하게 퍼진 녹조 때문에 아픈 강의 울음소리와 용역깡패로 물든 노동 현장의 아우성이 소리 없이 사그라지고 있고,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태가 한 지역구만의 문제로 축소되고 있는 것은 다 올림픽 덕분이다. 대규모 언론파업으로 이어졌던 문화방송(MBC)의 김재철 체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 있고,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연임 재가가 가능했던 것 또한 올림픽 덕분이다.
우리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행복을 그 짧은 기간의 꿈속에서나마 맛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애초에 올림픽이 표방한 정신도 현실이 아닌 ‘꿈’의 제전이 아닌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멘붕’ 상태를 호소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복절을 맞은 지금 우리는 환각의 축제에서 깨어 또렷한 정신으로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이 흘린 눈물과 땀방울에는 색깔이 없다”는 공익광고에도 불구하고 인종, 민족, 국가, 계급, 젠더, 종교를 모두 초월한 올림픽 경기란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사실을.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대통령의 언행이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계층, 나이, 젠더, 인종을 넘어 모두 다 같은 국민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올림픽 개최를 핑계로 총칼을 앞세워 사회정의 구현과 복지국가 실현을 외치던 그분의 강림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올림픽이 여름이 치러져서. 아직 4개월이 남았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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