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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26 19:19 수정 : 2012.08.26 19:19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막스 베버는 국가란 폭력을 독점한 집단이라고 보았다. “(국가 성립의 전제조건인) 영토 안에서 질서 유지를 위해 물리력의 정당한 사용을 독점하는 실체”가 국가이다. 민영화에 안달이 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베버의 이 정의를 자꾸 떠올려야만 했다. 지배구조 문제를 연구하는 신제도경제학에서 철도와 같은 국가 기간시설의 민영화는 지극히 신중해야 할 대상으로 꼽힌다. 시장의 효율만으로 지켜낼 수 없는 공공성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철도와 공항을 민영화하겠다고 안달복달하는 이명박 정부의 논리에서 공공성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이제 시선은 군과 경찰로 향하게 된다. 베버의 국가 정의에서 ‘물리력의 정당한 사용을 독점’하는 전담기구이자, 신제도경제학에서 ‘절대 민영화해서는 안 될’ 것으로 첫손 꼽히는 조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철도나 공항 같은 국가 기간시설을 효율성 논리만으로 서슴없이 민영화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군대나 경찰의 민영화라고 해서 못 할 이유가 없다. 시장에 맡기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효율적인 치안과 국방을 제공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설마 하던 이런 상상은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지는 기업화된 용역깡패의 폭력 앞에 현실이 되었다. 과거에도 구사대나 백골단 같은 폭력이 난무했지만, 이제 그들이 기업화했다는 것은 국가가 독점해야 할 폭력의 한 부분을 시장으로 민영화했다는 뜻이다.

정작 물리력의 사용을 정당하게 독점했어야 할 경찰은 주폭 척결에 열심인 모양이다.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본인과 주변인의 삶을 망가뜨린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폭’이란 이름을 붙여서 느닷없이 ‘조폭’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사회적 분노의 배설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폭력의 민영화와 주폭의 탄생은 사실상 같은 뿌리를 가진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물리력을 정당하게 독점해야 할 경찰에게 더 많은 기득권을 위해 폭력을 사용할 것을 강요했고, 그것은 물리력 독점의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 폭력의 민영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당성을 잃어버린 국가의 물리력은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인 힘없는 개인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주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척결’해 버리는 데 사용된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생각보다 호의적이어서 희희낙락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우울한 소식만 이어지는 임기말에 모처럼 가뭄에 단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베버의 국가 정의에서 ‘물리력의 정당한 독점’에 실패한 대통령이 그나마 남아있는 부분인 ‘영토’ 문제를 갑자기 부각시키는 것은 우연이기 어렵다. 국가가 영토에 올인하는 사이 여의도에서는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7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한번도 정규직이 되어본 적이 없고, 따라서 2년마다 새 직장을 구해야만 했으며, 때로는 기본급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매일 등수가 발표되는 실적에 따라 한달에 100만원 남짓한 돈을 받아가면서 4대 보험의 보호도 거의 받지 못했다. 7년 동안 일한 그에게 남겨진 것은 상처받은 마음과 4000만원의 빚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 분노를 똑같은 피해자인 다른 사람들에게 폭발시켰다. 만약 그가 술에 의지했더라면 주폭이 되어 척결되었을 것이고, 노조를 만들어 상황을 바꿔보려 했다면 민영화된 폭력에 희생되었을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지만, 그 영토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까지 국가의 보호영역 바깥으로 내몬 것은 누구인가. 그러고도 여당 원내대표는 묻지마 살인이 야당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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