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30 19:18
수정 : 2012.08.3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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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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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전 전태일다리 위. 느닷없는 멱살잡이 사건이 벌어졌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반백의 노동자 멱살을 잡아챈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전태일 동상이 서 있는 청계천 전태일다리 위는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박정희 시절 산업화라는 장밋빛 아래 스러져간 붉디붉은 장미들이 그동안 얼마였던가. 국가동원체제에 가깝게 진행된 숨막히던 현실에 구멍을 낸 전태일이 1970년 노동현실의 절박함과 잔혹함에 온몸으로 항거한 곳.
전태일다리 방문 전 박근혜 후보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 했으나 유족과 쌍용차 노동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일정을 전태일다리로 급히 돌렸다. 사전협의가 충분치 않았고 산적한 노동현안에 대한 어떤 입장표명도 없이 난데없이 전태일재단 방문이라니, 거센 항의는 자초한 면이 있다. 이런 행보에 대해 적반하장격으로 박 후보 캠프 쪽은 ‘국민 대통합’이라고 주장한다. 누구를 위한 국민대통합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헌화를 막아섰다는 이유로 멱살잡이를 당한 이는 다름 아닌 쌍용자동차 지부장이다. 스물두명의 동료와 가족을 떠나보낸 맏상주다. 그는 지난 8월8일부터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며 박근혜 후보 면담을 요구하던 인물이다. 면담 요구엔 차갑게 나오더니 헌화를 막아섰다고 뜨겁게 멱살잡이를 한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그러나 박 후보는 전태일을 산업화 과정에서 벌어진 하나의 지난 사건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단절하고 분리하려 했겠는가. 쌍용차 문제가 그렇고 용산참사를 대하는 모습이 그렇다. 아픈 현실의 문으로 들어가 과거를 보지 않고 몰래 담장을 넘어 과거에만 손을 내미는 행위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라기보다 현실을 기망하는 모습이다.
지금의 노동현안은 어떤가. 70년대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용역깡패가 밤낮 가리지 않고 노동현장을 유린하고 폭력을 일삼아도 처벌을 받기는커녕 공권력의 비호를 받는다. 법치를 세우겠다는 박 후보의 ‘줄푸세’ 공약은 이처럼 현실에서 헛공약이 되고 있다. 대화와 통합의 의지가 있다면 노숙농성으로 면담을 요구하는 쌍용차 노동자를 만나야 한다. 아직 새누리당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내 쌍용차 소위 구성을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는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이명박 정권의 실정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주요한 근거다. 박 후보가 포장 행보, 덮기 행보, 막무가내 행보로 국민대통합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란 얘기다. 쌍용차 문제에 대해 우선적인 입장과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일정으로 만들어지는 국민대통합 행보는 결국 ‘국민 대사기’ 행보로 읽힐 수밖에 없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전태일이다. 노동자는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아있다. 전태일재단을 방문하고 예의를 갖춘다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재벌과 자본 편에 선 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집권여당의 노동정책 방향을 노동자 쪽으로 트는 것이다. 현실에서 핍박받는 노동자들을 백안시하고 유령화하면서 무슨 전태일재단 방문이며 전태일 동상 헌화란 말인가. 박근혜 후보의 널뛰기 국민대통합 행보에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담기길 기대한다.
몇 해 전 이명박 대통령이 5·18 묘역을 방문하며 표지석을 밟아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행위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실수가 아닌 인식의 반영이기 때문인데, 이번 전태일다리 위 묻지마 멱살잡이 사건이 단순한 실수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 트위터 @nomad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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