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02 18:53
수정 : 2012.09.0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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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숙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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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까지 기껏 100일 남았다. 근데 이번 대선 국면은 참 희한하다. 여당은 후보를 일찌감치 정했다. 그리고 그 여당의 후보는 정말 열심히 한다. 거침이 없어서 ‘광폭 행보’라 불리기도 한다. 온갖 곳들을, 그것도 별로 환영받지 못할 곳들을 돌아다닌다. 그들이 불편해하건 진정성을 의심하건 쇼라고 말하건 상관없이 간다. 내 갈 길을 가는 불통의 이미지로도 보이지만 열심히 한다. 지금 대선 유력 후보들 중 이 사람만큼 유권자의(혹은 반대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이는 없을 듯하다.
그에 비해 반대쪽은 어떠한가. 다들 왜 그리 장승처럼 우두커니 그 자리에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자신의 지지율이 고작 몇%에 불과한데, 지금 더운밥 찬밥 가릴 게 있나.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노력해야 하지 않나, 시쳇말로 땅을 박박 기어야 하지 않나. 근데 이미 대통령이 된 양 이들 올드보이들은 뻣뻣하다. 물론 저 뒤에 버티고 선 안철수씨 역시 마찬가지다. 제도 야권 단일후보로 유력시되는 그는 여전히 출마선언을 하지 않은 채 안갯속 행보다. 그러면서 야당 성향의 대중들을 꽉 쥐고 흔들어댄다. 놓지도 않는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다.
그래서 요즘 ‘반박근혜 전선’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이들은 노동자들이다. 모두가 끙끙거리며 보고만 있던 박근혜 후보의 눈부신 ‘광폭 행보’를 중단시킨 것도 그들이다. 박 후보가 지난 28일 전태일 동상을 찾아 헌화하려고 하자, 쌍용차 김정우 노조 지부장은 그를 가로막았다. 두달째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씨의 선거캠프 앞에서 제기한 노동자들의 면담요청을 거절하더니 어찌 전태일을 만나려 하는가라는 울분을 토로했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선거구호로 내건 박 후보에게 ‘노동자의 꿈을 짓밟지 마라!’ ‘외면하지 마라!’ ‘쌍용차 국정조사에 응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뿐이 아니다. 지금껏 반이명박, 반박근혜, 반새누리당 전선에서 가장 열심히 싸운 이들은 노동자들을 선두로 한 이 땅의 민초들이다. 희망버스에서, 고공 크레인 위에서, 전국을 도는 삼보일배에서, 혹한의 겨울 장기투쟁 사업장을 돌던 희망의 뚜벅이로, 그리고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의 무수한 몸싸움으로, 그리고 대한문의 노동자 죽음에 대한 분향소 싸움으로, 그리고 지금 여의도 박근혜씨 선거캠프 앞에서 전경들에게 맞고 모욕을 당하면서.
그래서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가 만든 것이 아니다. 만약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반정의를 폭로하고, 비정상적인 행태를 고발하고, 더이상 이런 사회를 지켜볼 수 없다는 변화의 바람이고, 민중들의 요구를 응집한 열망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현상’은 이 땅의 수많은 민초들이 피 흘리며 눈물 흘리며 만든 것이다. 이 땅의 서민들이, 노동자들이, 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의 모순을, 비극을 고발한 결과다. 그것이 여하튼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는 ‘변화’를 향한 불씨를 댕겼다. 그 불씨가 그럭저럭 이만저만 살던 중산층 촛불시민들까지 일깨웠다. 2008년에 꺼져버린 촛불을 다시 살렸다.
그러니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자유주의세력과 안철수 당신은 무임승차자다. 당신들 역시 87년 6월항쟁의 성과를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만든 세 김씨와 제도 야당과 똑같은 무임승차자일 뿐이다. ‘안철수 현상’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바로 지난 4년간 민중의 고통과 투쟁이 있다. 그들이 안철수 현상을 만든 사람들이다. 근데 지금 제도 야당 후보들 당신들은 팔짱끼고 뒤로 물러앉아 노동자들이 대신 싸워주니, 민주대연합이 구축되는 데 노동자들이 나섰으니 속으로 흐뭇해할 것인가? 당신들 언제까지 이렇게 ‘무임승차’할 텐가?
권영숙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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